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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우리들의 일그러진 ‘빵셔틀’

[칼럼]우리들의 일그러진 ‘빵셔틀’

기사승인 2009. 10. 2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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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겸임교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이문열 씨가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는 주먹을 앞세워 학생들 사이에 군림하는 엄석대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절대 권력자 엄석대가 구축한 왕국 아래에 ‘백성’에게는 ‘절대 복종’만이 강요될 뿐이다. 군사정권의 횡포와 압제를, 한 시골학교 교실에 빗대 묘사한 것이라지만, 이는 2009년 대한민국 공교육 현장에서 현실로써 승화된다. 지나간 시대의 소설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주가 된 셈이다.

‘빵셔틀’이란 말을 들어보셨나. 여기서 ‘셔틀’은 한 온라인 게임에서 병력을 실어나는 비행선을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 ‘빵’이라는 접두어를 감안하면, ‘빵셔틀’은 ‘누군가’에게 빵을 갖다 바치는 학생의 신세로 요약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누구를 상징할까. 교내 폭력조직 이른바 일진으로 해석된다. ‘빵셔틀’은 따라서 교내 폭력으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학생들을 뜻하는 것이다.

한 학생이 쓴 거라고 한다. “학교 안에는 세 가지 계급이 있다. 싸움 잘하는 1진을 중심으로 한 귀족, 공부를 잘하고 돈 많은 양민, 공부도 못하고 소심해 괴롭힘을 당하는 천민. 빵 조달 능력이 탁월하면 ‘속업셔틀’, 중간에 빼앗기면 ‘셔틀추락’이라 부른다.” 세상을 말세라고 일컫던 때가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그러나 이건 정말 막장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어떤 학부모도 자기 자녀에게 학교 가서 유용하게 쓰라고 폭력을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학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폭력에 떨고 있고, 폭력으로 그 공포를 이기려 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공부” “공부” 강요하며 압박한 탓이다. 공부 강요를 타박하는 것은 무리이겠지. 문제는 학부모들이 은연중 강조하는 ‘공부의 목적’이다. 한 여자고등학교의 급훈이라고 한다.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달라진다.’ 이따위 저급한 급훈을 써대는 교사 배후에 박수를 보내는 학부모가 있다.

교육을 인간다워지는 과정이 아니라 신분상승의 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우등한 학생을 중심으로 솎아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한 반교육적 철학을 가진 학자가 요직에 오르는 세상이다. 이런 압박과 강제 속에 학생들은 ‘사람 사이에 계급이 있다’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된다. 또한 이러면서 학교 안에서는 부리는 사람, 부림을 당하는 사람으로 계급이 재구성된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뚜렷해지는 학생 내 계급화 현상은, 학교 폭력은 물론, 재력 그리고 외모에서부터도 형성된다. 어떤 학교 교사가 한 말이란다. “아이들 사이에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보다 ‘돈만 많으면 된다’는 목적론이 팽배한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잘생기고 부자인 일부 아이들은 ‘꽃남’을 자처하며 못 생기고 가난한 다른 친구들을 ‘서민’ 또는 ‘집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재력이, 외모가, 재력과 외모가 안 되면 폭력의 원리가 어이없는 현대판 신분제로 고스란히 승화된다. 우리 사회의 계층구조가 공고화되고 있는 현상과 엮어서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무엇인가. 기회균등의 원리는 무엇인가. 약자에 대한 배려는 무엇인가. 어른들에게 없는 이 고민들이 아이들에게 있을 리 없다. 애들 탓하기 전에 어른들부터 돌아볼 일이다. 학교는 어른 세계의 군상이 모형처럼 발현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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