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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버린 택배상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다

무심코 버린 택배상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다

기사승인 2012. 03. 0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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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심번호 서비스 등도 여전히 헛점 많아..운송장 완전히 분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
      
집 주변이나 길가에서 배송이 완료된 택배상자의 운송장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운송장에는 수취인의 이름, 연락처, 주소, 품목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사진=송병우 기자 SONO@
[아시아투데이=송병우 기자] 수취인 정00.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XX-XX. 전화 010-73XX-88XX. 제품명-숙취 해소용 음료 세트.

자신에게 배송되는 택배상자에 버젓이 적혀있는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다면 이미 범죄의 타깃이 됐을 수도 있다. 범죄자들에게는 운송장에 적힌 개인정보는 훌륭한 범행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택배상자 '개인정보'

분당에 사는 직장인 정모씨(남·35세)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쓰지도 않은 해외 통화 요금이 미납됐다며 이동통신사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정씨는 "휴대폰 요금이 연체됐다며 계좌번호까지 보내왔지만 의심이 들어 이체하지 않았다"며 "경찰에 신고해 나중에 알고보니 운송장의 개인정보들을 수집한 사람들의 보이스 피싱 범행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자상거래 활성화로 택배 수요가 늘면서 운송 과정에서 드러난 개인정보를 악용한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그동안 온라인상의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된 부작용은 숱하게 지적되면서 정부 및 기업 차원의 개선책이 마련돼왔다. 하지만 택배 서비스를 통한 정보 유출과 피해사례는 크게 부각되지 못하면서 범죄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택배 운송장에 적힌 고객의 개인정보가 범죄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제품 배송을 위해 제공한 고객의 이름과 연락처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유출돼 절도, 강간, 스팸문자, 보이스피싱 등의 범죄로 악용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선 경찰들은 소비자들이 택배 상자를 버릴 때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가 적힌 부분을 확실하게 폐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남경찰서 강력계 한 관계자는 "외부인의 접근이 용이한 아파트나 서초·논현동 등 오피스텔이 밀집된 분리수거장에 개인정보가 적힌 라벨을 그냥 버리는 것은 범죄를 부추기는 행위"라며 "최근엔 스마트폰의 바코드 리더 기능을 이용해서 운송장의 바코드를 읽는 범죄 사례까지 있는 만큼 개인정보를 전혀 알아 볼 수 없도록 분쇄해서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심 안 되는 '안심번호 서비스'


이같은 우려 때문에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안심번호 서비스' 등을 통해 개인정보 보호에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안심번호 서비스는 업체와 택배사가 소비자에게 '0503'으로 시작되는 11자리 가상 전화번호를 부여해 서로 배송 연락을 취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실제 전화번호는 필요없이 가상번호만 노출돼 이용자의 정보를 보호하게 된다.


하지만 이 서비스를 받더라도 개인정보 유출 방지에는 한계가 있다. 안심번호는 오로지 수취인의 '전화번호'만을 가려주기 때문에 여전히 이름과 품목, 주소 등의 개인정보는 운송장에 노출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마저도 11번가와 인터파크, 옥션, G마켓, 쿠팡 등 일부 상위 업체에서만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픈마켓 최초로 안심번호 및 아이핀 서비스를 시작한 인터파크 관계자는 "2009년 5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고 다른 업체들로 확산됐다"며 "택배 상자에 적힌 각종 정보를 이용한 범죄가 늘면서 향후 다른 신생 업체들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쿠팡도 지난 21일 소셜커머스 업계에선 처음으로 안심번호 서비스를 시작했다. 쿠팡 관계자는 "배송상품 구매자는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상품 배송이 완료되면 부여된 안심번호가 자동 해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업체들은 고객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이런 최소한의 장치조차 시행하지 않고 있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를 위해서는 업체가 해당 통신사에 고객의 전화 번호 하나당 약 100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하루에도 수십만 명에게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선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현재로선 확실한 운송장 폐기만이 방법"

서울 구의동에 사는 김모씨는 최근 3만원을 들여 가정용 미니 분쇄기를 구입했다. 우편물이나 택배상자 등에 적힌 개인정보를 악용한 범죄가 늘고 있다는 소리에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후 우편물의 봉투나 운송장 등을 버릴때 반드시 분쇄기를 이용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택배 관련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김씨처럼 자신의 정보 유출을 사전에 철저히 차단하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구성원이 모두 바쁜 가정의 경우 직장이나 편의점 등에서 택배 물품을 수취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조언이다. 또 혼자 사는 경우에는 집주변의 가게나 경비실을 수취 장소로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와 함께 소비자들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판매자들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마켓과 소셜커머스를 통해 거래하는 일부 판매자들은 택배 운송장에 여성속옷이나 생리대, 성인용품 등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소비자 정보를 알릴 수 있는 품목에 한정해 제품명을 블라인드 처리하고 있다.

택배 서비스를 악용한 범죄 예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경남 남해경찰서 김성룡 경관은 "최근 '이렇게까지 하는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치밀한 수법들이 범죄에 동원되고 있다"며 "귀찮다는 이유로 택배상자를 그냥 버리지 말고, 배송추적을 통해 배달 시간과 택배기사의 전화번호를 미리 알아놓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진승언 한국정보처리학회 교수는 "업체들이 택배상자의 개인정보를 키 교환방식으로 암호화한 바코드 운송장 등을 이용하는 등 새로운 배송 서비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본지 7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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