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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윤명로 작가 “답은 자연이더라”

한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윤명로 작가 “답은 자연이더라”

기사승인 2013. 03. 2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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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서 6월 23일까지 '윤명로:정신의 흔적'전 전시
한국 현대미술계의 거장 윤명로 작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투데이 김수경 기자 = "50년이 넘게 미술을 해 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그림을 그렸을까. 누워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답은 결국 자연이었습니다." 

한국 현대추상회화의 거장 윤명로 작가가 26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윤명로: 정신의 흔적'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윤명로 작가는 "흔히들 미술에 있어 '자연'이라고 하면 풍경이나 산수를 연상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관련된 현상 또한 자연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제 작품이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총괄한 이추영 학예연구사는 "윤명로 작가의 작품 세계는 10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흐름과 함께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특히 최근작들은 의도적인 표현을 뛰어 넘어 궁극의 추상적인 경지에 이른듯한 완숙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명로의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대나무, 깊은 계곡의 폭포, 안개, 바람, 지구를 포함해 대자연의 원시적 생명력, 자연에 대한 경외심 등 자연의 풍부한 이미지가 연상된다"면서 "작가가 그러한 이미지를 의도하고 그린 것은 아니지만 작품 속에 작가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관객들이 더욱 깊은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윤명로 작가의 50년 화업을 총 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각 시대별 대표 작품과 함께 최초로 공개되는 대형 회화 신작 등 총 60여 점이 공개됐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이후까지 10년 단위로 윤 작가의 작품이 전시 돼 있으며 특별한 설명 없이도 작품 세계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만큼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회화M.10 (Silver painting, plaster and oil on linen, 162x132cm, Leeum,Samsung Museum of Art, 1963)

윤 작가의 초기 작품인 1960년대 작품들은 당시 한국 미술계를 휩쓸었던 앵포르멜('비정형'이라는 뜻으로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생한 서정적 추상회화의 한 경향) 추상 회화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는 사르트르의 소설 '벽'을 모티브로 제작한 '벽B'(1959), 파리 청년 비엔날레 출품작 '회화 M. 10'(1963), 절규하는 사람 형상을 나타낸 '문신 64-1' 등 어두운 색채와 재료의 물질감이 두드러지는 대표 작품이 전시 돼 있다. 

균열 76-421 (Acrylic and mixed media on linen, 129.8x96.5cm, Courtesy of the artist, 1976)

1970년대에는 추상 회화의 강렬한 감정이 가라앉고 엄격한 화명구성과 옅은 청회색, 흰색 등 단색조의 형태감을 보여준 '자'(Ruler)와 '균열' 연작을 선보인다. 윤 작가는 '자'가 '규범, 질서'를 상징한다고 규정하고 규범과 질서가 붕괴되는 현실적 상황을 녹아내리고 부서지는 이미지로 형상화 했다. '균열' 연작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작품에 균열(crack)을 표현해 표면적으로 보이는 우연성과 비의도성에 숨겨진 치밀한 구성을 보여준다. 

얼레짓 86-625 (Acrylic and india ink on cotton, 160x227cm,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1986)

1980년대에는 '얼레짓' 연작이 발표됐다. '얼레짓'은 연실을 감는 '얼레'와 '얼레빗', 행위를 나타내는 '짓'을 합성한 단어다. 윤 작가는 '얼레짓' 연작에서 아크릴 물감과 먹을 이용해 반복적인 붓질을 해 가며 촘촘한 선을 여러겹으로 형성한다. 이로써 마치 한 폭의 문인화를 연상시키듯 여백의 공간과 자유로운 선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익명의 땅 95810 (Oil and acrylic on cotton, 194x259cm, Private Collection, 1995)

1990년대 '익명의 땅' 연작은 충북 부강의 대형 창고에서 완성됐다. 윤 작가는 거대한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큰 경외감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작품에 내던져 거대한 화폭에 드라마틱한 추상표현 회화를 선보인다. 이 때의 작품들은 풍요로운 대지와 새로운 생명력을 형상화한 작가의 엄청난 에너지를 그대로 담고 있다. 

겸재예찬 MIV.710 (Acrylic and iron powder on linen, 227x182cm, Private Collection, 2004)

2000년대에 선보인 '겸재예찬'은 1990년대의 격렬한 에너지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명상적인 추상 회화를 보여준다. 윤 작가는 리넨이나 면천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채색한 후 철가루를 이용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가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와 명상, 운필의 충만한 기운을 보여주고 있다. 

고원에서 MXII-910 (Acrylic,iridescence on linen, 210x291cm, Courtesy of the artist, 2012)

전시의 마지막은 윤 작가의 2012년 신작들로 채워져 있다. 신작이 전시된 공간은 인위적 조명 대신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만을 배치했으며 바닥에는 푹신한 카페트를 깔아 관람객들이 이 공간에서만큼은 편히 쉬고 명상하고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윤명로 작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윤명로 작가는 "작가인 내가 내 작품을 지루하게 느낀다면 관객들은 얼마나 더 지루해 할까 하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다보니 10년 주기로 작품에 변화가 온 것 같다"면서 "앞으로 어떤 재료를 이용해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며 미소를 지었다. 

한편 '윤명로: 정신의 흔적'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작가 회고전 시리즈의 일환으로 오는 6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2전시실에서 전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 기간 동안 큐레이터와 함께하는 갤러리 토크, 전문가 대담회, 어린이 및 청소년 대상 감상교육 등 전시와 관련한 다양한 교육·문화 행사를 함께 진행 할 예정이다. 

티켓 청소년 무료, 성인 3,000원. 문의(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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