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하루 차이로 영면한 2명의 위대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4.27)와 야노스 슈타커(1924~2013.4.28)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그들은 각각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와 양성원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음악계의 어른 로스트로포비치
20세기 명성을 떨친 수많은 첼리스트 중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광폭행보'를 보인 첼리스트로는 아마도 로스트로포비치(사진)가 꼽힐 듯 합니다.
그는 첼리스트로서의 활동은 물론이고 관현악 및 오페라 지휘까지 섭렵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은 음악계의 어른이었습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1927년 당시 구 소련의 일부였던 아제르바이젠의 바쿠에서 러시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첼로를 가르쳤던 아버지는 바로 스페인의 유명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의 제자였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1943년에는 모스크바에 정착하게 되고 첼로, 지휘, 작곡 등을 배웁니다. 당시 러시아 정부가 개최한 젊은 음악가들을 위한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여러 무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후 1963년 리에주 콘서바토리에서 지휘자 키릴 콘드라신과의 협연을 시작으로 그는 서방 세계에서도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특히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을 만나 전폭적 지지를 얻게 된 그는 이후 첼로 소나타와 세 개의 첼로 모음곡, 첼로 교향곡 등을 헌정받아 초연했습니다.
브리튼 외에도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슈니트케, 메시앙, 블레즈 등 위대한 20세기 작곡가들이 그를 위해 곡을 헌정하기도 했죠.
특히 그는 '자유의 대변자'로서의 역할 또한 열정적으로 수행했습니다. 1968년에는 그의 친구인 소련의 소설가 솔제니친이 '수용소 군도'를 집필할 당시 은신처를 제공해줬습니다.
당시 공산당 서기장인 브레즈네프에게 보낸 솔제니친을 옹호하는 편지를 각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죠. 그는 결국 1974년 스위스를 거쳐 미국 망명을 감행했습니다.
특히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그가 서베를린 측 장벽 아래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는 모습은 전 세계 브라운관을 통해 커다란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또 그의 제자인 첼리스트 장한나는 5회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그를 "진정한 스승"이라고 격찬했는데요. 장씨가 하버드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것도 로스트로포비치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전해집니다.
◇양성원의 스승이자 헝가리를 알린 야노스 슈타커
지난달 28일 향년 88세로 별세한 야노스 슈타커(사진)는 헝가리가 낳은 세계적인 거장입니다. 동향 출신의 현존하는 거장 첼리스트 미켈로스 페레니의 선대뻘이죠.
슈타커는 1924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습니다.
6세 때부터 첼로를 연주했고 7세 때 부다페스트 리스트음악원에 입학한 뒤 11세에 데뷔 리사이틀을 연 신동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조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했죠.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카고 심포니 등에서 활약했으며 인디애나대학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유명 첼리스트 양성원도 그의 제자입니다.
뛰어난 기교와 무결점의 완벽함으로 유명한 슈타커는 1998년 그래미상을 받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롯한 150여 장의 음반을 남겼습니다.
1967년 이화여대 대강당 독주회를 시작으로 2005년 예술의전당까지 수차례 내한공연을 펼쳐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입니다.
◇대표 음반은 코다이 무반주,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이 두 사람의 오랜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반을 한 장씩만 꼽자면, 슈타커는 동향 작곡가 졸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로스트로포비치는 작곡가 브리튼과 협연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작곡가 브리튼이 직접 피아노 반주를 맡은 다소 이색적인 음반입니다.
영국의 데카(DECCA)레이블에서 발매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명연주입니다.
특히 브리튼은 이 음반을 좋아해서 별세 직전까지 침대에서 이 음반을 들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집니다.
슈타커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로 명성을 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48년 24세의 나이로 미국으로 건너간 슈타커는 피리어드 음반사에서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녹음합니다.
이 음반은 슈타커 특유의 웅대한 기백으로 당시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평론가 데이비드 홀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파블로 카잘스의 후계자가 드디어 나타났다"라며 "위대한 음악가로서의 예술성과 기술이 하나로 융합된 면모를 확실히 갖추고 있다"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그는 생전에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소나타를 4~5차례나 녹음하는 등 이 음악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음악을 잘 모르시는 분도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떠올리시면 아실 수 있을 듯 합니다. 전편에서 폐부를 찌르는 음악이 영화의 비극성을 극대화했죠.
또 슈타커의 제자 양성원도 이 음악을 녹음해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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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저민 브리튼이 피아노를, 로스트로포비치가 첼로를 연주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음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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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타커가 연주한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음반입니다. 비교적 젊은 시절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주목됩니다. |
-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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