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명반 헤레베헤의 모차르트 레퀴엠
헤레베헤는 지난 1947년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의학을, 음악원에서는 피아노를 전공한 다소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그와 비슷한 이력을 가진 지휘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타계한 이탈리아의 주세페 시노폴리(1946~2001)가 있습니다.
헤레베헤는 졸업 후 낮에는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저녁에는 집에서 조용히 악보를 읽었다고 회고 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지날 수록 의사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됐고, (직접 창단한) 합창단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가 주목을 받으며 점차 음악이 삶의 전부가 됐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끊임없는 음악적 도전으로 지난 1991년 작곡가의 작곡당시 악기(시대악기)연주를 특기로 하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고, 이들과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녹음한 수많은 음반들 중 2장의 음반은 애호가들에게 동곡의 가장 뛰어난 명반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멘델스존의 아기자기한 극음악 '한여름밤의 꿈'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이날 소개할 모차르트의 레퀴엠입니다.
지난 1996년 헤레베헤의 모차르트 레퀴엠이 첫 선을 보이자 BBC뮤직 매거진의 저명한 평론가 로빈슨 랜든은 "연주의 극적인 모습 뿐만 아니라 슬픔의 면모가 인상적이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는 "템포는 빠른 악장에서 생생하고 유연하며(키리에 푸가), 느린 부분에서도 늘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랜든의 평가처럼 이 음반은 약동감과 슬픔을 잘 녹여낸 뛰어난 것입니다. 또 프랑스 음반사 아르모니아 문디의 생생한 녹음기술 역시 가치를 더해줍니다.
기자가 아직 학생이었던 12년 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모 진공관 앰프 제작사에서 탄노이의 대구경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이 음반의 라이브한 소리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마치 음반을 듣는듯' 완벽에 가까운 실황
1일 공연을 한마디로 평하자면 '눈으로 들은 음반'이라고 평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특유의 '둥글둥글한' 시대악기의 음향과 합창단과 성악가의 실력이 음반에서 즐기던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줬기 때문입니다.
헤레베헤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온 몸을 다해 약동하는 지휘와 다양한 표정을 선보였습니다.
이날 기자가 앉았던 1층 앞줄 왼쪽 구석자리에서는 지휘자의 표정을 하나 하나 살필 수 있었는데요. 그가 조직하고 수십년 간 함께 해 온 악단 및 성악단과의 연륜이 담긴 호흡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이날 공연에 소프라노로 참여한 대한민국의 임선혜씨도 초반에는 목이 덜 풀린 느낌이 있었는데 공연이 진행될수록 녹록지 않은 실력을 보였습니다.
임씨는 독일 유학 중 불과 23세의 나이로 헤레베헤에 전격 발탁돼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헤레베헤는 공연 후 몸을 돌려 관객들을 향한 후 "포 유(For you)"라고 말한 후 앵콜 연주에도 섭섭치 않은 배려를 보였습니다.
헤레베헤는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와 완벽과 순수는 음악으로 내가 닿고자 하는 지점이고, 지금까지 부지런히 달려와서 이제는 거의 손에 닿을 듯하다.
앞으로 허락된 시간 동안 더 완벽하고 순수한 음악을 위해 여정을 계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순수한 음악여정'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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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필립 헤레베헤의 내한 공연이 열린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의 전경입니다. |
헤레베헤가 모차르트 레퀴엠 중 '진노의 날(Dies irae)'을 지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