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me2.do/GAnmGVY5

[출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4)우리가 오랑캐다!

기사승인 [2014-03-03 09:24]

역사왜곡하며 ‘소중화’ 자처한 조선의 왕들...하늘겨레 망각의 세월
중화가 되고자 형제를 오랑캐로 만든 조선 사대주의
출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4편

글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사라진 ‘첫 삼한’과 너나없이 저지른 역사왜곡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가 저지른 만행의 핵심은 고구려·백제·신라 이전의 우리 역사를 지워 버린 것이다. ‘유라시아는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길’이라 했는데 그 드라마 앞쪽의 3/5 필름을 숫제 지워버리고 드라마의 처음을 한사군(漢四郡)으로 잡아 드라마 이름을 아예 ‘한반도는 2천년 조선의 길’로 바꿔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역사왜곡을 일본만 했을까. 동북공정으로 악명 높은 차이나(China)가 있다. 그들은 제 평가는 높이고 남의 평가는 낮추는 ‘역사의 분식회계’(粉飾會計) 즉 춘추필법(春秋筆法)이란 말장난으로 2000년 동안 늘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

예를 들면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화살에 눈을 맞아 애꾸가 되어 도망간 당 태종이 그 와중에 양만춘에게 비단을 하사하고 격려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바는 역사왜곡의 중심에 우리 스스로가 있었다는 사실(史實)이다.

작은 역사왜곡에는 고려시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팩트(fact)는 둘째 치고 평가에서 김부식은 당송(唐宋)의 사가(史家)들과 춘추필법이라는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조선의 왕들은 더 큰 역사왜곡을 했다. 조선 태종은 서운관(書雲觀)의 고서(古書)들을 주자의 말에 어긋난다며 종로네거리에서 불을 질렀다. 세조, 예종, 성종은 아예 3대에 걸쳐서 온 나라에 사서(史書)수거령을 내려 고조선비사, 표훈천사, 고려팔관기, 대변설, 조대기, 삼성밀기, 진역유기 등을 비롯한 수만 권을 없앴다.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에 대보단을 만들고 명나라 왕들의 제사를 지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조선식 사대

조선 숙종 때 창덕궁 후원에 만든 대보단(大報壇)이란 제단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군을 보내줬다고 명나라 신종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숙종이 몸소 술을 올리고 종묘에서 제 조상님 모시듯 치성을 드렸다. 영조는 거기다 명나라 태조와 의종을 더했다. 명 태조는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정해줬다고, 의종은 남한산성에 구원군을 보내줬다고 그 은혜를 갚겠다며 아예 세 사람의 기일마다 제사를 올리라고 규정까지 내렸다.

온 천지에서 망한 명나라 왕들을 오로지 조선에서만 제사를 지낸 것이다. 압권은 정조다. 임기 24년 동안 딱 한 해만 빼고 제사 올리는 기록을 세웠으니 아비인 사도세자보다 죽은 명나라 왕들이 더 위였다. 그도 모자라 정조는 유생들과 무인들에게도 제사 참석을 의무화해 빠지면 과거 응시 자격을 뺏고 관리들은 벌까지 주었다.

고종은 어떤가. 올해가 갑오전쟁-동학혁명 120주년인데 제 나라 백성이 일본군에게 도살되는 그 와중에도 명나라 왕들의 기일을 지킨다고 바빴다. 대한제국은 아예 내놓고 환구단에서 천제를 올리며 “중화문명의 정통이 명나라를 거쳐 조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말했다.

이것이 조선식 사대의 실상이다. 이리하여 오늘 우리는 스스로 ‘하늘겨레’가 아니라 중화(中華)의 자손이라 믿는 얼빠진 역사인식을 가지게 됐다.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만큼 잘 먹고 잘 산 나라가 없다 했는데 왜 굳이 사대를 자처했을까. 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위화도 회군을 보며 무민공(武愍公) 최 영 장군의 충성심은 높이 사면서도 현실감각을 잃었다 생각하는가.

그때부터 세종 때까지 틈만 나면 초원지대로 물러난 북원(北元, 원나라의 또 다른 이름)은 명나라를 같이 정벌하자고 수없이 제안을 하였다. 조선은 그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결국 북원은 알아서 50만 명나라 대군을 깨뜨리고 왕인 영종을 포로로 잡는다. 한족의 황제가 사로잡힌 최초의 사건조차 모르면서 오로지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역사인식으로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사대를 했어야 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다.

여말 선초 우리의 군사기술은 강력했다. 사진은 당시의 신무기인 신기전
영화에도 나왔듯이 조선 초기의 군사력은 막강했다. 신기전(神機箭)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미사일 기술은 세계 최고라서 명나라 사신들이 올 때마다 불꽃놀이를 보여 달라 조를 정도였다.

그를 알아서 없앤 이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 세조였다. 저 같은 왕이 또 나올까봐 스스로 군축을 한 셈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청나라의 원조인 누르하치가 부모의 나라인 조선을 구하겠다고 정병 5만을 보내겠다고 청해도 들은 척도 않고 오로지 명군만 기다렸다.

이유는 조선의 건국이념이자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자학에 있다. 조선은 고려말까지 4천여 년 이어온 하늘겨레와 홍익인간의 정치이념을 내팽개치고 중화를 다시 뒷받침한 주자학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정도가 아니라 그에 푹 빠져 조선이 망할 때까지 반만년의 유산을 다 갉아먹으며 사문난적(斯文亂賊) 놀이에 해지는 줄 몰랐다. 그러다보니 경술국치에 이르러 이 겨레는 빈껍데기가 되어있었다.

고구려와 건곤일척의 전쟁을 벌인 수양제(왼쪽)는 그 바람에 나라가 망하고 당고조(오른쪽)도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
◇하늘겨레와 중화, 칸과 천자

과거 첫 번째 삼한의 전통을 이은 두 번째 삼한 고구려·백제·신라는 한결같이 ‘모두가 하늘겨레’임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 오로지 ‘나만이 하늘의 아들’이라는 한족(漢族) 천자의 이념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하늘겨레는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져오는 정치이념이며 그 짝이 바로 홍익인간이다. 반면 천자의 이념은 곧 중화이니 모든 세상을 제 발밑에 두어야 한다. 하늘겨레의 임금인 ‘칸’은 요즘으로 치면 이사회 의장이다.

이사회는 안에서야 온갖 권력투쟁으로 피를 흘리지만 주주들과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지지를 얻지 않고서야 배겨날 수가 없다. ‘화백’이 그렇고 초원의 ‘코릴타이’가 그렇다. 정수일 문명사가에 따르면 하늘겨레의 한 갈래인 돌궐(투르크)은 텡그리(하늘)가 도는 방향으로 자리를 정해 동서남북이 아니라 동남서북이다. 당연히 사신들을 맞이할 때 서열이 없고 여러 왕들이 모여도 모두 다 칸으로 부른다. 마치 ‘김 사장’ ‘이 사장’ 부르듯이.

그러나 천자는 다르다. 천자의 백성들은 하늘겨레가 아니라 그저 바닷가의 모래 즉 억조창생일 뿐이다. 자신은 하늘을 대신해 관리하지만 하다가 잘못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피조물인 억조창생 가운데 누가 감히 대들 수가 있는가.

이를 모른다면 수·당과 고구려의 70년 전쟁에서 늘 이기기만 했던 고구려가 왜 끝내 무너졌는지 알 수가 없다. 609년 수나라의 인구가 4600만으로 추정되고 중원에는 3500만이 살았다고 한다.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건곤일척을 펼쳤던 때 동원한 군사만 113만이 넘고 보급병까지 치면 400만이 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인해전술이다. 2차대전의 사상자 5000만으로 세계가 경악을 했는데 인구대비로 보면 수·당과 고구려의 70년 전쟁에 어찌 견주겠는가.

이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앞에서 ‘춘추필법’을 언급했다. 중화민족은 진 전쟁의 군사 수는 늘리는 게 아니라 줄여서 말한다. 더 나아가 고구려가 무너진 대가로 3500만이었던 중원의 인구가 참혹하게도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도 중화민족은 태연하게 당나라의 영광을 칭송했다. 87년이 지나 겨우 3500만으로 되돌아온 중원의 인구가 ‘안록산의 난’으로 다시 반토막이 났는데도 당은 145년을 더 버텼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을 ‘하늘겨레’가 아니라 ‘억조창생’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했던 참극이었다.

다행스레 두 번째 삼한(고구려·백제·신라)이 막을 내리고 코리아 역사공동체가 쪼그라들었을 때도 후고구려인 발해와 고려에 이르기까지 많이 옅어졌지만 나름대로 하늘겨레를 이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래서 해동성국 발해와 10~14세기 그 격동의 유라시아 루트에서 오롯이 저 홀로 국체를 지켰던 고려가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의 개국 공신인 오랑캐 여진족 출신 이지란
◇‘오랑캐’와 ‘되놈’이라는 말은 우리 얼굴에 침 뱉는 소리

오랑캐는 두만강 일대에 살던 여진족을 낮춰 부르던 말이다. 여진족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건주여진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이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나 낯익을 것이다. 그들은 곧 현재의 연변 조선족, 즉 재중동포처럼 고려 사람과 조선 사람과 뒤섞여 살았고 우리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며 특수관계로 이어져왔다.

요즘 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이지란(퉁두란) 같은 존재가 곧 건주여진이다. 그런데 그 여진의 땅과 사람이 곧 고조선과 고구려의 땅이자 사람이다. 그들은 발해에서는 서울이었고 서울 사람이었다. 그들은 조선 개국 이후 조선에 와서 지독하게 차별받는다. 관북은 버려진 땅이었으며 거기 간 장수들은 김종서와 남이부터 살아남는 이가 없다. 3박자의 마지막 결정타는 오랑캐라는 말이다. 지금도 지독한 욕이 ‘호로새끼’ 아닌가.

오랑캐는 부족 이름이기도 하고 말의 뿌리로는 오라비처럼 친족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말을 아예 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가장 인연이 깊은 하늘겨레였으며 지난 1000년을 빼면 한 나라 사람들이었다. 같은 말로 ‘되놈’이 있다. 우리말에 동서남북의 바람이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이다. 그저 이북 사람을 뜻하는 말이 또 욕이 된 것이다.

◇초원의 길, 바다의 길을 아우른 복합문명 길잡이로 오랑캐를 복원하자

이제야말로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음식이 김치와 된장이 아닌가. 왜 된장인가. 콩의 원산지 만주에서 만들어졌으니 된장이다.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 그 뿌리의 2/3가 오랑캐이고 되놈인데 언제까지 그들을 욕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오랑캐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자. 한스승 환웅이 곰 부족에게 오라비 노릇을 했던 그 오랑캐가 코리아의 뿌리다.

이제 600년의 미망에서 깨어나자. 하늘겨레로 홍익인간으로 다가오는 우주시대를 열자. 우리가 오랑캐다. ‘초원의 길’과 ‘바다의 길’을 아우른 복합문명의 길잡이 그 이름으로 오랑캐를 당당히 복권시킬 때가 되었다.

최영재 기자 3bong@asiatoday.co.kr

ⓒ"젊은 파워, 모바일 넘버원 아시아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