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me2.do/5jAMSO52

<칼럼> 내 인생의 첫날

기사승인 [2014-03-18 14:20]

박원빈_1002
박원빈 애드원 스튜디오 총감독·영화 겨울왕국 더빙감독
살다 보면 항상 즐겁거나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 내가 뭘 잘못 했다고 하늘은 날 이토록 미워하는 거지?” 라며 세상을 원망한다. 그리고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극단적인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하곤 한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다닐 산악부에서 활동하며 축구, 마라톤 등 운동을 즐겼다. 건강에 대해 걱정을 해 본적이 없었던 필자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기침이 심해지더니 각혈을 하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왼쪽 폐에 큰 구멍이 2개나 뚫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폐결핵 말기였던 것이다.

집안 회의 끝에 할머니 동창생이 운영하는 전라남도 무안군 삼양면 산기슭에 자리잡은 ‘한산촌’이란 요양원에 갔다. ‘하나의 삶’ 이란 뜻인데 그 곳에서 새로운 삶음 찾으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 곳이 무덤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보이는 환자들이 거의 다 마르고 어께가 위로 올라 간 데다 볼이 심하게 파여 있었다. 그 때부터 하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살 수 없다고 확신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못할 위인이었기 때문에 약을 안 먹고 서서히 죽기로 결심했다. 입원 후 3일 째 부터 약을 안 먹고 그 약들을 병실 뒷산에 던져 버렸다. 그런데 약이 워낙 크고 많은지라 보름 만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 후로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약을 먹어야 했고 오전 10시부터 점심 전엔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결국 2달 만에 필자가 뱉는 가래에서 결핵균이 사라졌고, 환자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항상 절망적인 생각을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 자체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식사 때 우연히 식당 벽에 붙은 액자의 글을 보게 됐다. ‘나는 다리가 하나 없는 사람을 보기 전까지 내 구두가 헐었다고 불평했다.’ 얼마 동안 그 글을 보고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밥도 못 먹고 하루 종일 목 놓아 울었다. 서러움도 아니요, 원망도 아니요 자신이 이제까지 너무 우매한 생각을 하고, 정말 속없이 살아왔다는 자책이었다.

그 후로 2개월 만에 거짓말 같이 몸이 좋아졌고 검사결과 담(가레)에서 단 한 마리의 균도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도 기적에 가깝다고 했고 난 폐결핵 말기로 피를 토하고 입원한 지 5개월도 안 돼 퇴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이보다 더 힘든 일도 있었는데!’ “난 그래도 헌 구두를 신을 발이라도 있잖아!” 라는 생각을 가지니 모든 일들이 잘 풀리고 잘 되기 시작했다.

그 후 건강하게 군대까지 갔다 왔다. 그리고 올 해는 필자가 더빙 연출한 겨울 왕국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쁨도 누렸다. 만약 무안군 삼양면의 산골에서 자신에 대해 비관하고 세상을 원망만 하다 삶을 덧없이 마쳤다면, 오늘 날의 이런 영광을 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 동창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밝고 생기 찬 목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오늘이 앞으로 남아있는 내 인생의 첫 날이야.’

조한진 기자 hjc@asiatoday.co.kr

ⓒ"젊은 파워, 모바일 넘버원 아시아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