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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뉴욕시민들 911쇼크때 동물에게서 큰 위로 받았다”

[세월호 참사] “뉴욕시민들 911쇼크때 동물에게서 큰 위로 받았다”

기사승인 2014. 04. 2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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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데니스 터너 전 IAHAIO 회장 '세월호 트라우마' 극복 방안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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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서울 강남 역삼동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는 데니스 터너(Dennis C. Turner) 전 IAHAIO 회장 / 조준원 기자 wizard333@
9·11테러 10주년을 하루 앞둔 2011년 9월 10일 뉴욕에서 발간되는 타블로이드판 일간지 뉴욕 데일리뉴스는 9·11 당시 ‘티크바(Tikva)’라는 이름을 가진 치료견의 활약상을 자세히 소개했다.

당시 한살배기 강아지였던 티크바는 존재만으로도 ‘그라운드 제로(세계무역센터 붕괴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구조대원들의 심적 고통을 덜어줬다. 구조대원들은 잠시 쉴 때마다 티크바를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조련사에게 다음날 다시 데려와달라고 당부하곤 했다.

티크바 외에도 많은 치료견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 받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해 그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줬다. 이후 미국사회에서 재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있어 치료견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아시아투데이는 한국동물매개치료재활협회 창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데니스 터너(Dennis C. Turner) 박사를 21일 만나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고 있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터너 박사는 치료견을 비롯한 동물이 심리치료를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과 정신과 의사 사이의 다리(Bridge)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위안을 줄 수 있다고 했다.

- 동물매개치료라는 말이 생소하다.

“동물매개치료는 30여년전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어 영국·유럽·북미·남미, 이제는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아자부(麻布)대학에서 10여년째 동물매개치료 코스를 가르치고 있다. 아직 아시아 지역은 이 분야의 중심센터가 없는데 곧 세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물을 치료에 활용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동물매개치료·동물매개치료교육·동물매개활동 등이다. 사람치료전문가가 개입하여 실제 치료하는 것, 교사가 훈련된 동물을 데리고 교육에 활용하는 것,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동물을 데리고 시설 등을 방문해 여가활동을 돕는 것 등이 각각의 내용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인증기관은 대학 2곳, 일반기관 6곳 등 8곳뿐이다. 국가로는 일본·룩셈부르크·스위스·독일·이스라엘 정도다. 국제동물매개치료협회(ISAAT)에서 인증을 해주고 있는데 기준이 엄격해서 인증을 받기가 어렵다. 한국에서는 대구미래대가 인증 절차를 받고 있는데 준비가 잘 돼 있어 어렵지 않으리라 본다.”

- 세월호 참사로 한국이 슬픔에 잠겨 있다. 생존자·유가족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서구사회는 임상심리 클리닉를 비롯해 다양한 정신치료 방법들이 있지만 한국은 정신과 치료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동물매개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겠나.

“매우 비극적인 일이다. 전 세계가 한국에서 일어난 사고를 지켜보고 있다. 미국 9·11테러 등의 경험으로 세월호 사고 생존자들이 PTSD로 고통받을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9·11 당시 생존자나 희생자 가족들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는 등록제도가 있었다. 자격을 갖춘 많은 치료사들이 훈련된 동물을 데리고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을 찾아갔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 안나지만 델타소사이어티(미국 애완동물 동반자 협회)에서 많은 치료 봉사자들을 모았다.

이 때의 일을 통해 동물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지(Support)를 제공하고 우울증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물은 편견이 없어 자유롭게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특별한 움직임이 없더라도 그 자리에 동물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있는 치료사나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동물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정신과 의사에게 마음을 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먼저 동물에게 마음을 열고나서야 정신과 의사에게 마음을 열기도 한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동물은 고통 받는 사람과 정신과 의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동물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쉽게 말한다.

미국의 경우 클리닉이나 정신과 병원의 33%, 그러니까 3분의 1이 진료현장에 동물을 데려다 둔다. 유럽의 경우는 고양이가 많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치료사나 의사들은 이미 그 효과를 알고 있다. 그냥 가만히 고양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자기 집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개도 마찬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동물이 있으면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하고, 치료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어떤 동물이 효과적이냐는 환자가 이전에 어떤 동물을 길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와서 사고와 관련한 뉴스를 자주 봤다. 학교 강당에 자녀를 잃은 학부모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현장에서 사람들을 돕고 있는 심리치료팀들이 개를 데려다 가만히 있게만 해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개에게는 쉽게 말을 걸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치료를 받으려 치료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만 짖지 않고 조용한, 중간 크기의 훈련이 잘 된 개여야 한다. 전염병 등 위생상태도 확인돼야 한다. 또 개를 다룰 수 있는 훈련된 사람이 반드시 붙어 있어야 한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동물을 매개로 한 치료는 다른 치료를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완적인 방법으로 사용해야 한다. 또 모든 사람에게 효과를 보는 것도 아니다. 이전에 동물을 길러 본 사람들에게 특히 효과를 볼 수 있다.”

- 경기도 안산시의 단원고, 한 학교에서 많은 희생자·실종자가 나왔다. 학교 단위의 치료에 도움을 될 방법은 없겠나.

“훈련된 동물을 가진 치료사나 정신과 의사가 있다면 그룹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룹 토론의 자리에 개를 데려다 가만히만 있게 해도 된다. 처음에는 개를 만지작거리다가 자신의 감정을 개에게 이야기하게 되고, 이것이 활발한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 치료는 훈련된 동물이어야 하고, 위생상태도 확인해야 한다. 개를 다룰 수 있는 훈련된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치료사가 없더라도 집에서 원래 기르고 있는 동물이 있다면 상실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아시아투데이는 ‘하모니코리아’라는 슬로건으로 연중기획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사람과 동물과의 하모니’를 위한 조언을 구하고 싶다. 한국사회에는 유기동물 문제 등 올바른 반려동물문화 정착을 위해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

“런던에 있는 세계동물보호협회(WSPA)에 12년간 있으면서 유기동물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반려동물에 대한 윤리교육을 시켜야 한다. 다른 생명에 대한 존중, 동물은 사람과는 다른 요구(Need)가 있다는 점, 동물도 생존권이 있다는 점 등에 대한 교육이 있어야 한다.

일본에 있으면서 개에게 사람처럼 옷을 입히고, 선글라스를 씌우는 등 의인화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 하지만 동물을 사람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동물은 사람과는 다른 요구가 있다.

한국에 며칠 있는 동안 유기견은 1 마리 봤다. 고양이는 3 마리 정도 본 것 같다. 대만에서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유럽에도 문제가 있다. WSPA에 있으면서 일본·싱가폴·중국·중동·독일·프랑스·브라질 등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를 가진 여러 국가들을 조사했다. 문화마다 문제를 대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서양의 잣대로 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도 체나이에서의 경험을 말하고 싶다. 체나이의 거리에는 유기견이 정말 많았고, 사람과의 관계가 적대적이었다. 광견병이 문제였다. 5년전 백신접종으로 광견병이 사라지자 한 달만에 사람과 동물의 행동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동물에게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개들도 사람들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슬람 사회의 경우도 파헤칠수록 서양사회의 오해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각지의 문화에 맞추어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 데니스 터너 박사는

터너 박사는 1948년 미국에서 태어나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공중보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11년까지 스위스 취리히 대학 동물행동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동물매개치료 분야를 개척했다. 이 분야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1991년 스위스 응용동물심리행동학 연구협회(IEAP/IET)를 창설해 회장을 맡고 있고,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국제 사람·동물 상호작용 연구기관 연합(IAHAIO) 회장을 역임했다. 12년간 WSPA에 있으면서 과학자문패널 이사를 맡기도 했다. 일본의 아자부 대학에서 10여년 넘게 동물매개치료 코스를 맡아 학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1992년 하이디 터너 여사와 결혼해 아내의 나라인 스위스에서 살고 있다. 미국 시민권과 스위스 국적을 함께 갖고 있다.

◇ 인터뷰 후기

터너 박사는 인터뷰 내내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행여나 ‘참사 상황에서 무슨 동물이야기냐’는 비판이 있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습이었다. 이 사려 깊은 원로학자는 비극을 당한 한국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원했고, 그런 자신의 바람이 독자들에게 오해 없이 전달되기를 기자에게 당부했다. 한국인들의 비극을 같이 슬퍼해 준 터너 박사와 통역을 위해 애써준 최윤주 대구미래대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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