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검찰에 자수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의 운전기사 양회정씨(55)는 5월 3일 밤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유 회장님의 승용차를 가지고 오세요.” 김명숙(김엄마)의 목소리였다.
양씨는 이렇게 해서 유 전 회장의 도피 임무를 맡았다. 평소 관리하던 유 전 회장의 벤틀리 승용차에 유 전 회장을 태우고 경기도 안성에서 전남 순천의 별장 ‘숲속의 추억’으로 곧장 내려갔다.
이재옥 헤마토센트릭라이프재단 이사장(49·구속기소)과 김엄마, 추모씨 그리고 유 전 회장의 비서 신모씨(33·여·구속기소)도 다른 차량에 나눠탄 채 이동했다.
며칠 뒤 이 이사장과 김씨는 경기도 안성 금수원으로 되돌아갔다. 금수원에서 유기농 음식 재료팀을 맡고 있는 김씨는 유 전 회장의 음식을 조달하는 역할이었다.
순천에는 유 전 회장과 양씨, 추씨, 신씨 등 4명만 남았다. 그 뒤 별장에서 은신하는 유 전 회장을 신씨가 수행하고 양씨는 직선거리로 300m 떨어져 있는 야망연수원에서 지내면서 유 전 회장에게 필요한 도움을 줬다.
구원파에서 ‘목수’로 통하는 양씨는 별장에 누군가 들이닥칠 것에 대비했다. 별장 2층 양쪽 구석에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 ‘위급할 때 여기에 숨어있으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양씨는 5월 21일 검찰이 유 전 회장을 찾으러 금수원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순천에서 유 전 회장 도피를 지휘하던 추씨가 갑자기 연락이 안된다.
또 하루가 흘러가고 5월 25일 새벽 3시. 여느 때처럼 야망연수원 안에서 잠을 청하던 양씨는 창밖에서 나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유병언이 여기 있다고 합니다.”
검찰 검거팀의 목소리를 들은 양씨는 유 전 회장에게 이 같은 정보를 전달하지도 못한채 밖에 주차해놨던 EF소나타 차량을 가지고 순천을 빠져나왔다.
일단 금수원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판단을 내린 양씨는 처제를 만나 “유 전 회장을 그대로 두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머리를 하얗게 염색하고 가지고 온 차는 전주의 장례식장 주차장에 버려둔 채 양씨는 금수원으로 다시 잠입했다.
양씨는 그 뒤로 유 전 회장을 보지 못했다. 27일부터는 부인 유희자씨(51)와도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양씨는 나중에 검찰이 야망연수원 근처를 돌아보던 날인 25일 밤에 유 전 회장이 은신한 순천 별장을 덮쳤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신씨가 시간을 끄는 동안 유 전 회장이 별장을 빠져나갔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계속되는 은둔 생활 속에서 양씨는 21일 순천 별장에서 불과 2.5km 떨어진 매실밭에서 6월 12일 발견된 변사체가 유 전 회장이라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양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일치 확인 뉴스가 나오고 점점 유 전 회장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검찰에 자수한 부인 유씨가 풀려났다는 소식을 들은 양씨는 결국 검찰에 자수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