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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38년만의 이른 추석..‘명암’ 교차하는 시장과 마트

[르포]38년만의 이른 추석..‘명암’ 교차하는 시장과 마트

기사승인 2014. 08. 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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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상품 저렴하지만 사람들 발길은 여전히 대형마트로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간의 매출 격차 5배로 벌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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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만의 이른 추석 대목이 코앞이지만 여전히 시장을 찾는 발길은 뜸하다. 정부가 대형마트의 의무 휴일제까지 도입하며 전통시장 살리기에 나선상황이지만, 정작 전통시장 매출은 대형마트의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큰 전통시장의 경우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이 예년 같지 않다는 탄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반면 대형마트는 입구부터 사람들이 북적인다. 소지품 보관함은 이미 가득 차있고, 마트 안에는 젊은 신혼부부부터 노부부, 어린이들, 외국인까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는 옛말

“한 마디로 사는 게 힘들어요. 재래시장 물건이 마트보다 저렴하고 품질도 더 좋은데 손님들 대부분을 대형마트에 뺏기는 형편이예요. 대파 한단에 고작 300원 마진 남기고 파는데 이마저도 신통치 않네요”

서울 우림시장 통로에서 채소노점을 운영하고 있는 안순자씨(63·가명)는 이같이 한탄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우림시장은 38년 만의 이른 추석 대목을 앞두고도 한산한 모습이었다. 오가는 사람이 뜸한 이유를 묻자 상인들은 추석 대목 전엔 오히려 장사가 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귀빈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신영자씨(69·가명)는 “큰 시장이면 몰라도 이런 작은 재래시장에는 대목에만 손님이 몰리고 그전엔 손님 하나 보이질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우림시장은 전통시장 이용 활성화를 위해 온누리상품권 취급지정 플래카드도 내걸었지만 온누리상품권에 대한 상인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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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중랑구 우림시장 입구. 온누리 상품권 취급지정 시장이라는 홍보 현수막을 걸어놓고 있다. / 사진 = 문누리 기자
과일노점 운영한지 몇 달 안됐다는 30대 이 모씨는 “손님 10명 중 1명이 온누리상품권을 내곤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제도 중 제일 효과적인 경기활성화 제도”라며 극찬했다.

하지만 귀빈건어물 가게의 신 씨는 “장사가 안 되니 정부가 온누리상품권을 풀어도 시장에 들어오질 않는다”며 “대형마트 정기휴일이 있어도 전통시장 장사 안 되는 건 마찬가지”라고 푸념했다.

반면 주말인 17일 오후에 찾아간 제기동 경동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서울 최대 전통시장인 만큼 반찬거리를 사러 온 할머니·할아버지들과 가격 흥정을 하는 아주머니들, 엄마 손 잡고 시장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적잖게 볼 수 있었다.

상인들도 손님을 끌기 위해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고, 상인과 가격을 흥정하는 손님들의 모습이 영락없는 전통시장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상인들도 매출은 실속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통한과점을 운영하는 김진아씨(50·가명)는 “추석 일주일 전이면 북적북적하다. 경동시장은 큰 편인데다 물건도 좋고 값도 싸 찾는 이들이 많은 편”이라면서도 “하지만 예전만큼 대목이 대목같지 않은 건 동네 시장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시장에 가면~ 고기도 있고, 생선도 있고~”

같은 날 오후 서울 중랑구의 이마트 식품코너. 대형마트에서 한 엄마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장을 봤다. 아이에겐 이곳이 곧 시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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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롯데마트 청량리점 매장 내부 모습. 오가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 사진=조희경 기자
대형마트 내부는 쇼핑카트를 끌며 쇼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은 옛날의 전통시장을 방불케 했다.

대형마트의 위력을 보여주는 듯 50개의 소지품 보관함 중 비어있는 보관함은 10개 남짓이다. 마트 입구에는 참기름·참치통조림·커피·목욕용품 등 다양한 명절 선물세트상품을 진열해놓고 손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일부 판매원들은 이 지점에서만 행사하는 상품이라며 크게 소리쳤고, 신문광고상품이라는 커다란 플래카드도 눈길을 끌었다.

청량리 롯데마트의 모습도 같았다.

매장에서 특히나 손님들이 몰리는 곳은 ‘깜짝 세일’이나 ‘특별 할인’ 카드를 건 상품 진열대 앞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상품을 고르기 위해 요리조리 살펴보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표정은 엇갈렸다. 재래시장 중에서도 큰 곳과 작은 곳의 모습은 또 달랐다.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는 전통시장 상품이 더 저렴했지만 사람들의 발길은 여전히 대형마트로 향하고 있었다.

본지의 현지가격 조사결과 상(上)품질의 배는 재래시장에서 개당 3000~5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던 반면, 대형마트에서는 7000원에 육박했다.

고사리와 도라지 등 나물류(400g기준)도 재래시장에서는 4000~8000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었으나 대형마트에서는 1만원을 넘어 두 배 가격에 달했다.

부세조기의 가격도 전통시장은 2000~3300원 수준이었는데 대형마트에서는 5980원을 받았다.

우림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종우씨(35)는 “평소에도 근처 대형마트에 가서 가격을 비교하고 오는데, 1kg기준 구이용 한우 1+등급이 재래시장에선 62000원인 반면 마트는 90000원을 호가하더라”라며 “추석에 LA갈비, 돼지갈비 가격이 20%정도 올라도 시장이 대형마트보단 저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통시장 한 곳의 평균 매출이 대형 마트의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막대한 예산 지원에도 전통시장과 유통 대기업 간의 매출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은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2009년에는 대형마트 한 곳당 매출이 전통시장의 4.4배였고, 2012년에는 5배로 격차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전통시장 상인들은 대형마트와 비교해 마케팅이나 자금 조달 여력이 뒤쳐질 수밖에 없다”면서 “전통시장이 온라인 쇼핑몰 개척, 특화 상품 개발, 품질 혁신 등에 힘쓸 수 있도록 정부가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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