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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부산의 전설 돼지국밥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부산의 전설 돼지국밥

기사승인 2014. 08.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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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네요. 지난 주말 지인들과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드라마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부산 영화제에도 자주 가게 되고, 자연스레 부산이 좋아진 같습니다. 특별히 해운대를 좋아하게 되어서 영화제가 아니더라도 종종 가고는 합니다. 이번에는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함께 1박 2일로 후딱 다녀왔지요. 


부산은 제게 어느 분의 말처럼 조르지 않는 애인과 같습니다. 언제 가도 편안하고 푸근하지요. 늘 한결같은 느낌.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라면 밀면도 있고, 물론 바닷가이니 회도 있지만. 늘 저는 돼지국밥을 떠 올리고는 합니다. 제가 아는 한, 한국 음식 중에서 가장 박력이 있는 음식입니다. 시끌시끌한 해운대 시장통. 엄청 붐비고, 부산 사투리가 난무하는 국밥집.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돼지국밥을 한그릇 먹고 나면 아~ 이 음식은 참으로 선동적인 음식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경상도 지방으로 피난 온 피난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자,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돼지뼈를 이용해 설렁탕을 만들어 먹은 역사를 가진 음식이지요. 소고기를 넣은 설렁탕은 먹을 수 없고, 전쟁에 지친 서민의 주린 배를 채워 준 고마운 음식입니다. 순대국밥과 유사합니다만 부산지방에서는 돼지국밥만의 여러 특질을 유지하면서 차별화된 음식이 되었습니다.


부산은 유독 돼지국밥 전문골목이 많습니다. 40~50년 전통의 서면시장통,  남면시장통, 평화시장통, 해운대 시장통.. 편안한 마음으로 먹기에 그저 그만입니다. 돼지뼈와 잡고기를 솥에 넣고 24시간 펄펄 끓여 육수를 내고, 따뜻하게 데워진 뚝배기에 토렴한 밥과 돼지고기를 듬뿍 얹고 양념을 얹으면 맛있는 돼지국밥 한 그릇이 뚝딱 완성됩니다. 


야성은  빛나다                          최 영철

야성을 연마하려고 돼지국밥을 먹으러 간다/
그것도 모자라 정구지 마늘 새우젓이 있다/
(중략) 어디 그뿐인가 시장바닥은 곳곳에 야성을 심어 놓고 파는 곳/
그 따위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야성만을 연마하기 위해/
일념으로 일념으로 돼지국밥을 밀고 나간다
(중략) 눈물 찔끔 나도록 야성은 시장바닥 곳곳에 풀어 놓은 것/
히죽이 웃는 대가리에서 야성을 캐다/
홀로 돼지국밥을 먹는 이마에서 야성은 빛나다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 특유의 개방적이고 다소 남성적인 분위기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시장 통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활기찬 숨결과 억척스러움. 다른 도시에서는 쉬이 볼 수 없는 사직구장 ‘갈매기’들의 우렁찬 함성에도 야성은 묻어있습니다. 이제 돼지국밥을 먹어 볼까요.  뚝배기 밑에 깔려 있는 밥을 잘 섞어준 다음,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줍니다. 양념장 대신 깍두기 국물을 부어 넣어주고, 반찬으로 나온 부추절임을 잔뜩 넣습니다. 저는 돼지국밥에는 부추가 천생연분이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정구지 마늘 새우젓’ 등 온갖 자극적인 양념과 반찬을 듬뿍 넣어주지요. 고기와 밥을 크게 한 숟가락 떠서, 입이 미어터지도록 우물우물 박력 있게 씹어줍니다. 이 강력한 맛의 조합은, 어제 술을 많이 먹었을수록 더 강렬합니다. 뚝배기를 들고 국물을 시원하게 마셔줍니다. 땡초 즉 청양고추 하나 된장에 푹 찍어 냉큼 깨물면 온몸이 전율하면서 ‘눈물 찔끔 나도록’ 야성은 이마에서부터 땀으로 송글 송글 빛나게 되지요. 속이 스르르 풀어지면서, 몸이 더워집니다. 이 박력. 온갖 자극적인 것들이, 몸은 풀어주고 마음은 긴장시켜줍니다. 부산의 전설, 멋진 음식입니다. 

돼지국밥은 비싸지 않습니다. 매우 싼 편이지요. 주머니 가벼운 분들도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또 주문하면 엄청나게 빨리 나오지요.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 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긍정적인 밥      한 민복

밥의 위대함을 생각합니다. 박력 있고 강렬하며 선동적인 음식, 돼지국밥. 활기찬 부산의 시장통에서, 늦은 아침 한 그릇의 돼지국밥은 한 끼의 식사일 뿐 만 아니라, 마음까지 덮혀 주는 양식입니다. 저도 밥값을 하고 있을까. 제가 만드는 드라마는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덮혀 주고 있을까 생각합니다. 더 맵게 먹고, 더 힘을 내야겠습니다.


<고대화 아우라티비 대표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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