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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고등법원 판사 선출 박향헌 “보모, 세탁소 일하면서 공부했죠”

美 고등법원 판사 선출 박향헌 “보모, 세탁소 일하면서 공부했죠”

기사승인 2014. 09. 0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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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2] KOWIN 강연 중인 박향헌판사 (1)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 박향헌 판사가 지난 27일 ‘제14회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코윈)에 참석,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코윈
지난 6월 박향헌씨(52)가 선거를 통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 판사직에 한인 최초로 당선됐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17세 소녀가 미국에 이민 온 지 34년만의 일이다.

지난달 27∼29일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행사 차 방한한 박 판사는 윤일병 사건 등 한국사회에 직면한 현안에 대해 사회나 정부에 크게 의존하기 보다는 무엇보다 ‘가정’에서 답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 파출부, 보모, 세탁소... 가슴에 품은 법조인의 꿈

박씨는 1980년 미국에 도착, 베트남 난민과 소수민족이 많이 사는 가난한 마을 마운틴 듀(캘리포니아)에서 공부했다.

생활고 때문에 남의 집 청소(가정부), 베이비시터, 세탁소 일 등 직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그마저도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시키는 일을 제대로 안한다며 짤리기 일쑤였다.

박씨는 “집에 일정한 수입이 없어 당시 늘 일을 했다. 부유하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웃었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소외된 자를 대변하겠다는 꿈을 놓지 않았던 그는 미국 UC버클리 대학에서 심리학과 여성학을 전공하고, 1991년 UC헤이스팅스 로스쿨을 나와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이후 20년간 성폭행, 가정폭력 전문 검사로 활약한다.

▲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세요.”

‘동양인은 열심히 일한다. 일을 많이 시켜도 불평을 안한다’는 백인 미국인들의 선입견은 박씨의 오기에 불을 지폈다.

처음에는 불평 못하고 끙끙 앓은 적도 많고 일은 덤으로 많이 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생리를 깨우친 후부터는 ‘차별받는 이민자’ 딱지는 벗어버렸다.

지금도 미국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한인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아련하단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 ‘계속 하다보면 왜 안되는 가를 알게 되고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는 것.

박씨는 “역경을 이겨내는 것을 배움으로써 인생은 더 성공적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미국도 총기난사 등 사회 범죄에 골머리... 답은 ‘가정’

최근 한국의 폭력 사건에 대해 묻자 그는 사회나 정부에 크게 의존하기 보다 ‘가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박씨는 “현대에는 가정이 파괴돼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감지 하지못하고 무뎌지고, 아이들은 관계속에서 성장하지 못하고 고립된다”고 이유를 진단했다.

그는 또 “미국에서도 총기 난사 등 사회병리적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데 미리 예방 심리 치료를 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친 결과로 한국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첫째 가혹행위와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는 것, 전문가 상담을 받는 것, 따돌림 행위에도 필요한 경우 형사처벌을 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해결방법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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