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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부장판사 원세훈 판결 비판 후폭풍…보혁 갈등 심화

현직 부장판사 원세훈 판결 비판 후폭풍…보혁 갈등 심화

기사승인 2014. 09. 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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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정치화 우려” vs “법관의 표현의 자유도 보장돼야”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인터넷 게시판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 사건 판결에 대한 신랄한 비판 글을 올린 것과 관련 보수와 진보 양 진영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을 놓고 보수와 진보 간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대법원이 직권으로 해당 게시글을 삭제한 이후 법관의 ‘표현의 자유’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수인사들은 현직 판사가 다른 재판부의 판결을 비판한 것은 법관 윤리를 위반한 것이자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는 입장인 반면, 진보인사들은 법관의 표현의 자유도 보장돼야 하며 사법부 내 소통수단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김동진 부장판사 소속 수원지법 징계청구 검토중

17일 대법원에 따르면 박홍래 수원지법 성남지원장은 김동진 부장판사(45·사법연수원 25기)가 ‘법치주의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로 원 전 원장의 대선개입 사건 1심 재판을 맡은 재판부를 비난한 것과 관련해 징계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소속 기관장이 김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청구 여부를 검토해 법원행정처에 징계를 청구하면 법관징계위원회에서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오전 법원 내부 인터넷 게시판 코트넷에 “국정원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점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서울중앙지법의 국정원 댓글 사건 판결은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당 재판부를 비난했다.

김 부장판사의 글이 논란이 되자 대법원은 같은 날 김 부장판사의 글이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고 직권으로 해당 글을 삭제했다.

◇보수 진영 “명백한 명예훼손, 법원의 정치화 깊은 우려”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의 법조계 인사들은 김 부장판사의 행동이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며 사법부가 엄하게 징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일각에선 사법부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종순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모임(헌변) 회장은 “여러 법관들이 글을 공유하는 인터넷상에서 다른 판사의 판결을 비난한 것은 명백히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며 “최근 판사 임용 과정에서 인격을 안 보고 성적순으로만 뽑다보니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고 비난했다.

이 회장은 이어 “현직 판사가 공공연한 장소에서 동료판사의 판결을 비난한 이번 사태는 사법부가 심각한 위기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김 부장판사의 행동은 법관 윤리에도 반한 것으로 사법부가 엄하게 징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관윤리강령 4조는 ‘법관은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해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A변호사 역시 “일반 시민이 재판부의 판결을 비난하다가 명예훼손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판례가 있다”며 “법을 다루는 판사가 이 사실을 더 잘 알 텐데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변호사는 이어 “최근 이 같은 사태가 증가하고 있는 거 같아 사법부의 정치화가 심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진보 진영 “게시글 삭제는 지나쳐, 법관의 표현의 자유도 보장돼야”

대법원은 김 부장판사의 해당 게시글이 ‘사법부 전산망 그룹웨어 운영지침’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직권삭제했다.

김 부장판사의 글이 △타인의 명예훼손 △정치적 중립성 침해 △게시판 개설 목적 비부합 등 운영지침상 삭제 대상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법관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술자리에서나 할 말을 통신망에 올릴 필요는 없었다” “1심 판결이 문제라고 판단했다면 상급심을 기다리면 되는 것” 등 김 부장판사의 행동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다수다.

김 부장판사가 법관의 ‘금기사항’을 스스로 깨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올라온 글을 삭제한 것을 두고 ‘지나친 조치’라는 시선도 있다.

법관도 어느 선까지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 부장판사가 어디까지나 법원 내부통신망에 의견을 표출한 것에 불과하다면 삭제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사의 판결을 다른 법관이 비판하는 것이 ‘재판의 독립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린다는 지적에 대해 하 교수는 “결과적으로 글이 외부로 알려져 재판의 독립성 침해 문제가 나온 것”이라며 “당사자가 그것(언론공개)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는 의견을 낼 수도 있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기본적으로 판사들과 법원 공무원의 소통의 장 역할을 맡고 있는 코트넷의 취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울고법의 B부장판사는 “김 부장판사의 비판글 게시행위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판사들이 많다고 들었다”면서도 “게시판을 통해 어떤 판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금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단지 다른 판사의 판결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B부장판사는 “김 부장판사의 글에는 원세훈 1심 재판장에 대한 인신공격성 내용이 담겨 있어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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