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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폭풍의 핵 ‘사용후 핵연료’…핀란드서 답 찾는다

[르포]폭풍의 핵 ‘사용후 핵연료’…핀란드서 답 찾는다

기사승인 2014. 09.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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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이라는 기피시설을 경쟁력을 활용, 투명한 정보공개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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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에우라요키시 올킬루오투섬에 건설중인 온칼로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의 모습. 에우라요키시의 주민들은 59% 찬성률로 이 시설을 유치했다./사진=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로부터 240km 서쪽 끝 해안가에 위치한 에우라요키. 이곳은 6000명 남짓한 인구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소도시다. 인구는 극소수지만 에우라요키는 핀란드 내 도시 중 GDP(국내총생산) 2위를 차지하는 ‘경제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자국 내 전력의 32% 가량을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소는 물론 원전 폐기물 저장시설까지 구축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원전 시설 유치로 인해 에우라요키에는 일자리가 늘었으며, 세수입도 증가했다. 에우라요키는 원전이라는 기피시설을 경쟁력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원전으로 도시 경쟁력 키운 에우라요키
에우라요키는 우리나라로 치면 혐오 시설이 4개 이상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핀란드 전체 원전 4기 중 2기가 건설됐으며, 5번째 원전도 건설 중이다. 2020년에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시설도 운영되는 등 에우라요키는 명실상부한 ‘원전 종합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원전에 대한 공포감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 원전시설들로 인해 국가 전체의 전력을 책임진다”라는 자긍심까지 가지고 있었다. 핵 에너지에 대해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우리로서는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 18일 에우라요키 현지에서 만난 고등학생 에쉬 헤이노넨양(17)은 “정부 및 규제기관에서 핀란드 원전은 안전하다고 발표했고 주민들도 그 발표를 믿고 있다”며 “원전을 통해 우리 지역이 핀란드의 전체 전력과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민들의 무한 신뢰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하리 히티오 에우라요키 시장은 “원전과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모든 자료를 주민들이 접하면서 원전 주체들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있었다”며 “안전이 보장된다면 원전은 도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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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에우라요키시에 위치한 올킬루오투 원자력 발전소의 모습./사진=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철저한 정보 공개로 주민거부 없이 원전 시설 구축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논란거리 중 하나인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의 유치에 대해서도 에우라요키는 1987년부터 2000년까지 주민 등이 참여한 공론화 작업을 거쳤다. 이 과정을 거쳐 에우라요키 시민의 59% 이상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유치에 찬성했다.

에우라요키 시민들이 사용후 핵연료 시설을 높은 찬성률로 유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핀란드 원자력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기구(STUK)’의 역할이 컸다.

STUK는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기 때문에 객관적 판단과 정보 공개를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매년 조사를 통해 원전 찬반 의향을 확인하는 등 주민들의 원전 거부감 조사도 실시 중이다.

리스토 이삭손 STUK 공보관은 “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모든 정보는 웹페이지와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고 있으며 원전 주변지역 주민과는 1년에 한 번 이상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철저한 정보공개로 문제될 소지를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하는 셈이다.

에우라요키에서 운용되는 원전 시설은 주민 복지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실제 에우라요키는 연 2만여 명의 관람객들이 찾고 원전시설의 법인세는 물론 고용창출과 이 고용자들의 소득세로 인해 핀란드 내 대표적인 ‘부촌’으로 거듭났을 정도다.

베사 얄로넨 에우라요키 시 의회 의장은 “방폐장을 유치할 당시, 지역 이미지 실추도 우려됐지만 지금은 사용후 핵연료 영구처분시설을 유치한 지역으로 유명해졌다”며 “해외 언론이나 유치 예정지역 주민, 원자력 학계 등의 외국 방문객 수도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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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부터 운영되는 온칼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의 전경./사진=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핀란드의 사례가 한국에 시사하는 바는?
현재 수많은 나라들이 원전 운용 후 발생하는 핵폐기물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장실 없는 집을 지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원전을 운용하면 폐기물에 대한 처리도 확실하게 정했어야 하지만 대다수의 나라가 이를 놓친 셈이다. 미국도 네바다주에 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을 추진 중이지만, 주민 수용성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1978년 첫 원전시설을 유치하면서 폐기물 처리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했다. 야나 아볼라티 핀란드 고용경제부 에너지과 수석고문은 “처음부터 정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일은 없었다. 독립된 원전 규제기관의 안전성 공표 및 주민들의 신뢰성 확인이 함께 진행되면서 사용후 핵연료 시설에 대한 거부감을 크게 낮췄다”고 설명했다.

이런 핀란드도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에는 원전 무용론이 제기됐었다.

리스토 팔테마 STUK 핵물질 규제 담당관은 “후쿠시마 사태로 원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 원전업계, 지자체, 주민 모두 자국 내 원전의 안전성을 재확인하면서 당초 계획대로 전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역주민을 제외시킨 상태에서 정부가 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보니 반핵정서만 키웠다. 이렇게 잘못 채워진 첫 단추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정책을 표류시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23기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는 현재 대부분 수조에 임시 저장돼 있지만 저장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핀란드 정치인, 지자체장, 공무원, 주민들은 “사용 후 핵연료 전략은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신들 역시 논란이 많은 사용후 핵연료를 구축하기 위해 처음부터 ‘국책사업’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투명한 소통”이 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 운영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입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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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에우라요키에 위치한 온칼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현장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사진=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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