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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스포츠를 말하다] 대기업 총수들이 만든 한국 특유의 스포츠마케팅

[기업, 스포츠를 말하다] 대기업 총수들이 만든 한국 특유의 스포츠마케팅

기사승인 2014. 09. 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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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스포츠 연맹 회장직에 이름 올린 대기업 총수 역할 커져
과거 기업들에게 부담스러운 사회기부에서 새로운 스포츠마케팅 기법으로 활용돼
정의선 부회장 양궁장
정의선 현대차 그룹 부회장(대한양궁협회장, 가운데)이 27일 오전 인천 계양 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양궁 컴파운드 단체전 한국과 대만과의 결승경기를 찾아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을 확정 짓자 박수를 치고 있다./사진 = 이병화 기자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가 한창인 27일 정의선 현대자동차 그룹 부회장이 인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을 찾았다. 남녀 양궁 컴파운드 단체전 결승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 부회장은 현재 대한양국협회장을 역임중이다. 양궁은 현대차가 후원하고 있는 스포츠 중 하나다.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이 1985년부터 1997년까지 양궁협회장을 맡았고, 현대차 그룹 계열사인 현대비엔지스틸 유홍종 상임고문이 1997년부터 2004년까지 협회장을 지냈다. 정 부회장은 2005년부터 협회장으로 양궁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20일에 이어 23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개인전이 열리는 인천 드림파크 승마장을 찾았다. 김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 였다. 한화와 승마협회의 인연은 2012년 당시 신은철 한화생명보험 부회장이 회장직을 맡으며 이어져 오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차남규 한화생명보험 사장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인기가 많은 프로스포츠나 국제 스포츠이벤트에 기업들의 이름으로 후원계약을 맺고 자사의 이름을 알리는 행보는 극히 일상적인 마케팅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의 글로벌 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에게는 글로벌 기업들과 달리 또 다른 방식의 스포츠 마케팅 수단이 있다. 바로 총수들이 비인기 스포츠 관련 협회의 장을 맡고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국제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보다 보면 TV화면에 종종 대기업 총수들이 비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들 총수들이 찾은 경기장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기업들이 구단주 역할을 하는 프로야구나 프로축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스포츠들은 양궁·핸드볼·빙상·아이스하키 등 말 그대로 비인기 종목들이다.

대한체육회 산하의 많은 스포츠연맹들을 이끌고 있는 회장들을 보면 유난히 대기업 총수나 CEO들이 상당히 많이 포진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은 대한골프협회장을 맞고 있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막내사위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을 담당하며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의 직함을 갖고 있다. 김정 한화그룹 상근고문은 대한사격연맹을, 구자열 LS그룹 회장은 대한사이클연맹을 이끌고 있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을 역임하고 있고, 대한축구협회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외에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대한탁구협회)과 최태원 SK그룹회장(대한핸드볼협회)도 비인기 종목인 탁구와 핸드볼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다만 최 회장의 경우 최근 법적인 문제로 핸드볼협회장직을 한정규 SK텔레콤 부사장이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82년부터 1997년까지 대한 레슬링협회 회장을 역임했던 것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기업들은 이런 상황을 자사의 이미지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기업들은 총수나 CEO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스포츠 연맹과 해당 국가대표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있다. 이런 활동은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부각 시키기에 충분하다. 비인기 종목 활성화를 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5공화국 시절 엘리트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들에게 할당되며 시작됐던 총수들의 스포츠 연맹 회장직은 당시만 해도 대기업에게는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부담스런 사회기부였다. 물론 총수 자신들이 관심이 많은 스포츠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젊었을 당시 레슬링을 했었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대한레슬링협회를 책임졌던 것과, 자전거 마니아인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2009년부터 대한사이클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들의 생각이 변화했다. 그 동안 자의와 상관없이 돈을 지원해야 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자신들의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총수들과 주요 CEO들의 스포츠 조직 운영은 국내 엘리트 스포츠 발전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야구와 축구 같은 인기 스포츠들이야 찾는 관람객이 많고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점에서 스포츠조직의 수익 창출이 한층 수월하다. 하지만 핸드볼 같은 비인기 종목의 경우 수익창출은 고사하고 적은 금액의 후원금을 끌어들이기도 쉽지 않은 것이 국내 스포츠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 총수들의 역할은 비인기 스포츠의 숨통(?)을 띠어 주고 있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이벤트 때 마다 ‘우생순’ 신화를 생각나게 하는 핸드볼의 경우 여전히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고 있다. 전용경기장이 없어 이 곳 저 곳을 옮겨가며 운동을 했던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 투혼을 불사르며 메달을 따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 그 이상의 무엇을 경험하게 했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고 체계적으로 이를 도와 주려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희망을 준 것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었다.

최태원 회장은 공사비 430억원을 들여 2011년 대한민국 최초의 핸드볼 전용 경기장을 만들었다. 비록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 내의 펜싱 경기장을 리모델링하는 것이었지만 이런 관심은 핸드볼인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마케팅에서 말할 때 스포츠를 활용해 기업의 이미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기업의 정체성과 해당 스포츠와의 연관성이 높아야 효과적인 마케팅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대기업 총수들이 각종 스포츠연맹 회장직을 담당하는 것은 이런 상식적인 이론의 틀을 벗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기업들은 스스로 해당 스포츠의 이미지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녹여가면서 이런 부조화를 사라지게 하고 총수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자사의 제품,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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