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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6.25는 남침’이라고 공개하는 이유?

중국이 ‘6.25는 남침’이라고 공개하는 이유?

기사승인 2014. 10.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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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방한 두달 전 북한 접경지 단둥에 입간판 설치
조선전쟁 배경 등 자세하게 설명...北초소와 30m 거리
단교전경
중국 단둥시 관전현과 평안북도 청성군을 연결하는 칭청차오(淸城橋). 6·25 전쟁 때 중국군이 이 다리를 건너 참전했고, 미군이 보급로 차단을 위해 폭격으로 끊어졌다. 다리 위 초소에 북한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다. /단둥(중국)=양승진 기자
중국이 6.25 전쟁을 ‘북한의 남침’이라고 기록한 입간판을 관광객들에게 공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것도 북한군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는 초소에서 불과 30m 거리에 있어 중국 측의 의도가 뭔지 주목된다.

아시아투데이가 지난달 북-중 접경지역 취재하던 중 지난달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서 압록강을 따라 40km 떨어진 또 하나의 단교인 칭청차오(淸城橋)에서 6.25 전쟁을 소개하는 입간판에 ‘남진(南進)이라고 표기한 것을 발견했다.

이 입간판에는 조선전쟁 시점을 “1965년 6월 25일 조선(북한)인민군이 남진(남침)을 시작해 조선전쟁이 터졌다”고 기술했다. 중국이 6.25를 북한의 남침이라고 대외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김일성 소개에서는 “본명이 김성주(金成住)이고, 1912년4월15일 평양에서 태어나 1994년 평양에서 사망했다”고 적었다.

항미원조전쟁
칭청차오 난간에 붙어 있는 입간판 모습. ‘항미원조전쟁’을 기술해 놓았다. /단둥(중국)=양승진 기자
조선전쟁
6.25 전쟁이 북한의 남침이라고 써 붙인 입간판. /단둥(중국)=양승진 기자
조선전쟁 배경
조선전쟁 배경 입간판. /단둥(중국)=양승진 기자
김일성 소개
김일성 소개 입간판. /단둥(중국)=양승진 기자
다른 입간판에 적혀있는 조선전쟁 배경은 “김일성이 스탈린과 사전 모의한 후 몰래 베이징에 와 마오쩌둥에게 남침을 건의하자 지금은 시기가 맞지 않다고 했는데도 6월25일 전쟁이 터졌다. 마오쩌둥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썼다.

특히 항미원조전쟁은 “연합군에 대항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도와주고, 중국의 안전을 위해서 파병했다”고 게시했다. 중국의 항미원조는 ‘조선을 도와 미국에 대항’하는 것을 말한다.

간판이 걸려있는 칭청차오는 행정구역상으로 단둥시 관전현과 북한의 평안북도 청성군을 연결하는 길이 709m, 너비 6m, 높이 25m로 일제강점기인 소화 17년(1942년)에 준공됐다.

이 다리는 1950년 10월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수많은 중국 인민해방군이 건넜고,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주석의 두 번째 부인의 맏아들인 마오안잉(毛岸英)도 이 다리를 건넜다가 돌아가지 못했다. 단교는 1951년 3월 중국 공산당의 지원 보급을 끊기 위해 미군의 폭격을 맞아 끊어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끊어진 북한쪽 다리 위에는 군 초소와 병사가 보초를 서는 모습을 볼 수 있고, 가끔 망원경으로 관광객들의 동태를 살피기도 한다.

초소의 북한군
청성교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북한군인. /단둥(중국)=양승진 기자
이와 관련, 현지 주민은 “올해 5월1일 입간판을 설치한 걸로 알고 있다”며 “마오안잉을 영웅시 하기 위해 항미원조 차원에서 정부가 벌인 사업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입간판 설치에 대해 조선쪽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칭청차오 일대는 중국 정부가 국가급 중점보호문물로 지정해 주차장 시설과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는 등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입구에는 마오안잉의 전신 동상이 세워져 있고 주요 전쟁영웅들의 흉상이 도열돼 있다.

한편 중국이 6.25전쟁을 남침으로 표현한 것은 2010년 6월18일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선즈화 화둥사범대 교수가 “소련 기밀문서 해제로 북한의 한국침략이 밝혀졌다”를 시발로 그해 6월24일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는 한국전쟁 60주년 특집 기획에서 북한이 먼저 남쪽을 침략했다고 보도했다가 급히 삭제했었다.

또 그해 10월25일에는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이 “항미원조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표현했고, 지난해 12월26일에는 사회과학원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소련의 지지와 중국의 묵인 아래 군사행동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단둥(중국)=글·사진 양승진 기자 ysyang@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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