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중국 상하이(上海)까지 동행한 기자들에게 건넨 ‘개헌 봇물’ 발언이 23일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최고위원직 사퇴로 당청 갈등을 넘어 당내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이 된 ‘개헌 봇물’ 발언에 대해 전날 김 대표는 “나는 ‘어’ 했는데 언론에서는 ‘아’라고 보도했다”며 동행했던 기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지난 13~16일 3박4일의 중국 방문 기간에 김 대표와 기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당시 3박4일 동안 일어난 일들을 재구성했다.
김 대표와 언론과의 관계는 출발 전부터 삐걱거렸다. 중국으로 출발하기 10여일전부터 언론들이 “국정감사 중에 외유를 나간다”고 비판을 쏟아내자 김 대표는 당초 4박5일이던 일정을 축소해 빡빡하게 일정을 조정했다. 이로 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보라며 일정에 끼워넣은 황산(黃山)행이 취소됐다. 방중 일정은 사실상 중국 공산당이 짜 준 것이다.
삐걱거리는 소음은 방중 첫날 더욱 커졌다. 이날 40여명의 기자들은 김 대표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베이징(北京) 숙소에서 고립됐다. 중국 공산당이 정해 준 숙소는 인터넷 검색에도 나오지 않는 공산당 직영호텔이었다.주변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시설들이 둘러쌌다.
베이징 서북부 군사지구에 자리한 호텔을 두고 베이징 특파원을 지낸 한 기자는 “한국에 들어 온 외국 취재진을 경기도 이천의 호텔에 묵게 한 것과 같다”며 방중단에 포함된 당 대변인에게 대놓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기자들은 심야에 대변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김 대표와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그리고 시 주석과의 만남이 예정된 둘째 날 상황은 더 악화됐다. 기자들은 왕 부장의 인사말만 듣고 김 대표가 말하는 중간에 중국 측에 의해 행사장에서 쫓겨나야 했다.
베이징 중심 인민대회당에서 진행된 김 대표와 시 주석과의 만남도 취재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브리핑 역시 김 대표가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만찬 장소에서 직접 하기로 일정을 갑자기 변경, 기자들은 베이징 정반대 편으로 이동하기 위해 90분 넘게 버스를 타야 했다. 인민대회당 취재에 나섰던 일부 기자들은 뒤늦게 도착해 김 대표가 특파원들과 환담하는 모습을 어이 없는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김 대표는 브리핑을 통해서야 “중국 공산당과의 대화·만남이 중요하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했다”며 “기사 서비스가 소홀했던 점을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직후 기자들을 ‘벼룩’에 빗댄 대변인의 발언으로 상황은 더 악화됐다.
김 대표는 상하이로 이동하는 셋째 날 새벽부터 복장을 갖추고 호텔식당에서 기자들을 기다리는 등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국내 상황과 관련해서는 답변을 거절해 실망을 안겨줬다. 일정 마지막 날 조찬간담회 공개발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 대표의 ‘개헌 봇물’ 발언은 이 같은 상황에서 나왔다. 김 대표와 같은 식탁에 앉은 기자들은 김 대표의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노트북을 두드렸다. 기자들은 귀국 길에 “김 대표가 마지막 날 기자들에게 확실한 서비스를 했다”는 말을 서로 주고 받았다.
김 대표의 해석은 달랐다. 22일 김 대표는 기자들에게 논란의 책임을 돌리면서 “최근 제가 중국 여행이 끝나는 날 경계심이 무너져 말 한마디를 잘못해서 본의 아니게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데 전혀 제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언론 환경이 그래서 내가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