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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어떤 내용 담겼나?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어떤 내용 담겼나?

기사승인 2015. 01. 2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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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상회담·천안함 사과 대가로 쌀 50만톤 제공 요구", "천안함 이후 북한 요구 따라 국정원 고위급 방북", "정상회담 조건으로 옥수수 10만톤, 쌀 40만톤, 비료 30만톤, 개발은행 자본금 100억달러 요구"
북한이 이명박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과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의 대가로 쌀 50만톤 제공을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나 적지 않은 파문을 낳고 있다.

남북한이 새해들어 관계개선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화의 노력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담긴 내용 때문에 그동안 기싸움 양상을 보였던 남북관계가 급속하게 더 얼어 붙고 대화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관측된다.

29일 일부 언론이 입수한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에 담긴 내용 중에는 2009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천안함·연평도 포격 도발에 따른 대응 등의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공개됐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3월 26일 일어난 천안함 사건 이후 그해 7월 북한의 요구에 따라 국가정보원의 고위급 인사가 방북했던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기존에 우리가 제시한 원칙 이외에도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그러자 북측은 쌀 50만톤의 지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또 “북측은 천암함 폭침에 대해 ‘(당사자가 아닌) 동족으로서는 유감이라 생각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는데 이 역시 받아 들일 수 없는 일 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2009년 말부터 남북 간에 정상회담에 대한 물밑 논의가 시작됐지만 북한이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요구함에 따라 성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2010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조문단을 파견했던 북한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원한다’는 내용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7일 개성에서 통일부와 북한의 통일전선부 실무 접촉이 있었는데 북한은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서명한 내용이라며 합의서를 들고 나왔다”고 공개했다.

여기에는 정상회담 조건으로 옥수수 10만톤, 쌀 40만톤, 비료 30만톤, 아스팔트 건설용 피치(1억 달러), 국가개발은행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 제공 등이 담겨 있었지만 북한 자신의 요구를 합의인양 주장한 것이었다고 이 전 대통령은 기술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김성환 외교부 장관에게 “북한이 착각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먼저 정상회담을 요구한 것인데 분위기 조성을 위해 지원해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전하라”고 반박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지만 북한의 무리한 요구로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전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끌어내기 위해 중국을 강하게 압박했던 사실도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6월 캐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열린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유엔 안보리의 북한 제재 조치에 중국이 적극 협력해 달라”고 촉구한 사실도 밝혔다.

이에 대해 후 주석이 “천안함 사태는 중·한 양자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애매한 태도를 보이자 “이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외교 관계에서는 극히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압박했다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우리 4대강은 국가의 자원이라기보다는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앗아가는 재앙의 상징이 돼 있었다”면서 “그로 인해 역대 정부들은 수십조 원에 이르는 하천 정비 사업을 발표했지만 번번이 실행되지 못했다”고 추진 배경을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가장 큰 국책 사업이었던 경부고속도로, 포항종합제철, 경부고속철도, 인천국제공항 등은 하나같이 수많은 반대와 갈등에 직면했지만 결국 이 사업들은 후일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를 받았다”고 적었다.

현재 국회에서 국정조사가 진행 중인 자원외교에 대해서는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활발한 외교 활동을 벌였던 점을 언급하며 사업의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강변했다.

이 전 대통령은 또 2007년 17대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대통령 당선에 도움을 준 데 대해 감사하는 내용’의 친필 서한을 북측에 보내면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던 사실도 공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어이가 없었다”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그 해 5월부터 회고록 집필에 들어가 1년 10개월 동안 회고록을 정리했다. 회고록은 12개장 800쪽으로 구성됐다. 광우병 사태와 세계 금융 위기 대처, 세종시 문제에 대한 철학과 추진 배경과 과정, G20 정상회의 유치 배경, 대북 철학과 대처 방안 등 이 전 대통령의 임기 5년이 담겼다. 회고록은 다음 달 2일 정식 출간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 3년 차에 접어 들었지만 청와대 비선 국정 개입 논란과 문건 유출 파동, 연말정산 ‘세금폭탄’에 따른 증세 논란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정국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적지 않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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