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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스포츠를 말하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기업 스포츠를 말하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기사승인 2015. 01. 3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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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서울 서울서부지법.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굳은 얼굴로 법원으로 들어섰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 2차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인 없는 조 회장이었지만 재판부의 증인요청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이날 조 회장은 재판장에 들어가기 전 “제 딸의 잘못으로 상처입은 승무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사과드린다. 국민들에게 심려 끼쳐드린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하고 증인출석에 대해 “법원의 판단 존중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 출석했다”고 설명했다.

땅콩회항 사건은 조 회장 일가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었기에 대한민국의 대표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에도 그 타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항공기 이용고객수가 줄었고, 대한항공의 기업 이미지는 소위 ‘갑질하는 기업’으로 치부돼 버렸다.

그런데 ‘땅콩회항’ 사건으로 피해를 보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조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다. 이번 사건으로 조 회장의 운신폭이 좁아졌고, 가급적이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줄이는 모양세가 조직위에게는 좋을 것이 없는 상황이다. 3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성공적인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서 국내외 언론과 스포츠계·정계·기업인 들을 만나며 올림픽을 알리는데 앞장서야 할 조 회장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점은 조직위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지난해 7월 조직위원장을 고사하던 조 회장에게 정부는 떠 맡기듯 위원장 자리를 맡겼다. 당시만 해도 조 회장 말고는 이렇다 할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다. 조 회장이 2009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이유도 있지만 전세계 하늘을 날아다니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역할을 한 기업의 대표라는 점에서 그 만한 적임자는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건강악화로 대외 활동이 어려운 상황도 조 회장의 역할론을 키웠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조 전 부사장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얼마전 있었던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의 첫 정기 기자간담회 자리에는 조 회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분산개최 등의 이슈가 조직위를 괴롭혀 왔던 터라 어찌 보면 공식적인 기자간담회 자리에는 위원장인 조 회장이 앞장 서는 게 당연했다. 조 부사장 사건으로 언론 노출을 자제하려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3년을 남겨둔 평창동계올림픽은 과거 1988년 서울올림픽이나 2002년 한·일 월드컵과 같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인력과 자금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하지만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면 따낸 동계올림픽 개최이고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첫 동계올림픽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기대는 여전히 크다.

정부의 지원이 예전 같지 않고, 크고 작은 잡음들이 일어날 때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준비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위원장의 역할이다. 대내외적인 인지도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스포츠 행사의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IOC와 같은 국제 스포츠 위원회에 끝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행정적인 이득을 만들어가는 역할이 필수다. 세계 각국을 돌며 스포츠이벤트를 홍보하는 몫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주영 회장 서울올림픽
1981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서울올림픽 유치위원장 자격으로 올림픽 유치 확정서에 공식 서명을 하고 있다./출처 = 아산정주영닷컴
우리나라는 대규모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할 때 마다 대기업 총수들의 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스포츠 선진국과는 달리 전문적인 스포츠 행정가가 부족한 점이 그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 시작에 대기업 총수의 역량을 이용했던 선례가 있었다는 점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태생적 한계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예전처럼 크지 않을 수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국제 스포츠 경기 유치에 적극 나서는 상황에 대한 한 체육계 인사의 평가다. 대한민국의 국제 스포츠 경기 유치의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 있는 서울올림픽 유치가 대기업 총수의 노력이 있었다는 점에서 기업총수에 대한 스포츠의존도는 높아져 왔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됐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 효과가 크게 줄었다고 설명한다. 이 인사 말대로 기업총수 효과는 줄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총수효과’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글로벌 행보를 펼치며 최상의 결과를 낸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정부도 여전히 총수에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정부는 상황에 따라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총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저런 법적인 문제로 기업 총수들의 민간 외교 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사면과 같은 최대한의 배려(?)를 해줘 왔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 국내 기업의 수장이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준비하는 대표로 나서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기에 용이하고 스포츠 이벤트 유치라는 결과도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의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79년 제 24회 하계올림픽을 서울에서 개최하겠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결정이 나오면서부터였다. 그렇게 시작된 올림픽 개최의 꿈이 1980년 12월 정부가 IOC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본격화 됐다.

1981년 9월 개최지 선정이 예정돼 있던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는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거의 전무했다.

1981년 5월 정부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올림픽 유치 민간 추진위원장을 맡기고 올림픽 개최를 위한 선봉에 세웠다. 개최지 선정 4~5개월 전이라는 점과 글로벌 스포츠 인맥이 넓지 않았던 우리나라에게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정 회장은 이를 수락했다. 독일 바덴바덴으로 이동한 정 회장은 IOC위원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유치에 나섰고, 매일 아침 IOC위원들이 묵고 있는 방으로 꽃 선물을 보내는 등의 노력을 펼쳤다. 그 결과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서울 올림픽 개최라는 기적을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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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발표되는 순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감격스러워하고 있다./제공 = 삼성
이렇게 시작된 대한민국의 스포츠 위상 강화는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IOC위원을 지내며 한층 높아졌고, 현대자동차가 월드컵 공식파트너로 참여하면서 글로벌 스포츠계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입김이 세졌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와 달리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따른 효과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적 효과를 떠나 국가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도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도 많다. 대규모 자금과 시간·인력이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남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개최한 후에 국내에 새롭게 지어진 축구경기장들은 10년이 넘도록 적자에 허덕이는 상태다. 지난해 있었던 인천 아시안게임도 신설경기장을 활용해도 81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렇다 보니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대한 회의론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태도가 예전보다는 다소 소극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대한민국은 현재 동계스포츠의 꽃인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예산문제와 개최지역 및 운영 문제 등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조 회장의 역할은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조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은 여전히 국민들에게 공분을 사고 있지만 그에 대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다.

이제는 조 회장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3년 후에 있을 국가적인 대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정부도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조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점을 생각하고 조 회장이 위원장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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