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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이니셔티브 위해 식민사관 극복, 한·몽 동맹 부활해야”

“유라시아이니셔티브 위해 식민사관 극복, 한·몽 동맹 부활해야”

기사승인 2015. 02. 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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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창간 10주년/한몽 수교 25주년 특별기획] 칭기즈칸의 발원지 동몽골 탐사 기행 (3편)...'팍스몽골리카나'에서 '팍스코리아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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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와 코리아글로브의 몽골탐사 기행단이 지난 17일 울란바토르 교외 칭기즈칸 발원지에서 함께 하고 있다. 이 언덕은 칭기즈칸이 테무진 시절 첫아내를 이웃부족에게 빼앗긴 가슴 아픈 곳이다/사진=최영재 기자
한·몽수교 25주년을 맞아 (사)코리아글로브와 한국몽골학회, 아시아투데이는 민간 외교사절단을 꾸려 칭기즈칸의 발원지인 동몽골 지역 탐사기행에 나섰다. 탈북동포까지 포함한 한국과 몽골, 미국 등 3개국 모두 10여명이다.

이 동몽골 지역은 고구려·부여 등 우리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던 곳이다. 몽골과 카자흐스탄·터키 등 지금은 나라 이름을 달리 살고 있지만 선조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우리 민족과 한 뿌리를 갖고 있는 형제들이다.

최근 10여년 동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시는 빠른 속도로 개발되고 있다. 인구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몽골의 인구는 현재 300만명 돌파 직전에 있다. 금년 중 300만명을 돌파하는 첫 아기가 태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 평균 연령은 66세 정도다. 인구의 70% 이상이 35세 이하 젊은 층으로 구성돼 있다.

몽골은 최근 10년 이래 지하자원이 외국자본으로 집중개발되면서 경제 성장률이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지난 2~3년을 즈음해서 갑자기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몽골 경제는 러시아처럼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틈을 중국이 파고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경제 침투 때문에 이미 중국의 영토인 내몽골자치주에 이어 외몽골인 몽골 공화국 또한 중국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박원길 한·몽골 학회 이사장은 “몽골과 혈통과 문화적 공감대가 어느 나라보다 밀접한 한국은 몽골의 중국화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전략적인 안목을 가지고 과거 코리아와 몽골이 초원의 길을 열고 한 형제 국가로 어울려 살았던 것처럼 한·몽골 교류협력을 확대 증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1월 17일 아침 9시, 울란바토르 시내 한 복판 수흐바타르 광장에 섰다. 영하 35도, 두꺼운 장갑을 끼었는데도 금방 손가락끝이 시려온다. 강추위 탓인지 카메라의 셔터가 잘 먹지 않는다.

광장 바로 곁에 있는 ‘울란바토르 역사박물관’에 들어섰다. 칭기즈칸 이름이 새겨진 선돌이 박물관 현관 앞에 섰다. 몽골의 최고 국보인데 모조품이란다. 진품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 있는데 러시아가 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칭기즈칸 이후 몽골이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겪은 고난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고난을 겪은 우리 민족 처지와 흡사하다.

박물관 2층 계단으로 오르니 한쪽 구석에 외로이 ‘할흐골’에서 옮겨온 고려왕을 새긴 석상이 있다. 서기 668년 부여와 ‘코리’의 땅인 고구려 연방이 무너지고 한 무리는 발해로, 한 무리로 초원으로 흩어졌다. 박원길 이사장은 “고구려 연방 멸망 이후 초원으로 흩어진 일부가 그곳의 거란과 투르크 사람들과 섞여 8세기부터 맥코리, 몽골이라 불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몽골과 코리아는 고구려 전성기 무렵에는 같은 지역에서 같은 정치적 리더십 아래 혈통을 나누며 공존공생한 공동체였던 셈이다. 그 뿌리를 보여주는 고려왕의 석상이 이곳 박물관의 한 구석 그리 주목받지 못한 자리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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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탐사 기행단이 몽골의 전통 무속신앙 흔적인 돌무더기 앞에 섰다. 우리나라의 성황당 돌무더기과 같은 종교 전통이다./사진=최영재 기자
앞으로 ‘한·몽 역사동맹’이 제대로 자리잡으면 이 고려왕 석상부터 다시 원래 있던 자리인 ‘할흐골’로 모셔야 한다. 그리고 몽골의 국부라고 할 수 있는 칭기즈칸 이름이 새겨진 선돌도 러시아로부터 돌려받아야 한다. 오늘 역사기행에 함께한 한국과 몽골, 미국이 한·몽의 역사동맹의 힘을 모을 일이다.

올란바토르 역사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역시 광장 옆에 있는 ‘초이진잡 박물관’을 관람했다. 이곳은 몽골의 마지막 황제인 벅드 짭장담바가 마지막까지 기거했던 황궁이다. 이 황궁에는 형제의 혈통인 만주족이 세운 국가 청나라에 식민지배를 당했던 몽골의 슬픈 역사가 묻어 있다.

한국과 몽골, 미국 등 3국 역사기행단은 소형버스를 대절해서 울란바토르 인근 국립공원 테렐지로 향한다. 오늘 밤 한·몽·미 3국 역사기행단은 전통 유목민 방식대로 전통 이동식 가옥인 게르에서 숙박하며 서로의 우호협력을 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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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몽골 대초원에서 유목민들이 양떼를 몰고 있다/사진=최영재 기자
오후 5시 해질 무렵 테렐지의 유목민 캠프에 도착한 기행단은 전통 몽골식 양고기 요리인 ‘허르 헉’과 보쯔(몽골식 고기만두)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게르’에서 숙박했다.

해가 지니 1월의 몽골 초원 지역은 영하 35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진다.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이동식 가옥인 게르 안은 장작을 때는 무쇠 난로 덕에 훈훈하다. 칭기즈칸의 군대가 숙영지에서 그랬듯 한·몽·미 3국 연합 기행단은 천막 안에서 노래와 음주로 한국과 몽골의 우호협력을 다졌다.

한·몽·미 3국 연합 회식에서 새삼스레 한국과 몽골의 역사동맹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서는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에 심어놓은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데 공감대가 모아졌다.

1945년 9월 12일 일제의 마지막 총통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조선에 미군이 들어오자 항복문서에 서명하며 철수하면서 다음과 같은 연설문을 남겼다.

“일본은 졌다. 그러나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 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 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사람으로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 식민지 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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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불락의 칭기즈칸 기마상 앞에서 아시아투데이와 코리아글로브의 기행단이 함께 했다/사진=최영재 기자
1월 18일 기행단은 거대한 칭기즈칸 기마상이 있는 천진불락에 들렀다. 가슴이 아프다. 초원에서 일어나 전무후무한 세계제국을 이루고도 다시 흔적도 없이 초원으로 돌아간 칭기즈칸이 살아있다면 저런 기마상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진정한 상징물은 마음에 세우는 것 아닐까.

저리 크게 짓는 것은 칭기즈칸이 가장 싫어하는 짓이다. 동아시아에서는 민중에 대한 착취 강도가 가장 심했던 중화민족들이 저렇게 크게 상징물을 만들기를 즐겼다.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는 고구려부터 부여, 발해, 몽골, 코리아로 이어지는 북방겨레의 역사문명은 상징물을 크고 화려하게 짓지 않는다”며 “지금부터 한국과 몽골 등 북방 겨레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공존공생의 홍익인간의 정신을 되살려 아시아 공동체와 아시아 평화를 이루는데 노력해야 한다”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이 내부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몽골과 협력하여 대륙성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1월 18일 17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칭기즈칸 국제공항을 박차고 올랐다. △식민사관 극복 △한·몽동맹 부활 △통일 한국 건설 △21세기 ‘초원의 길’ 재건 △북방겨레 교류협력 등 무거운 과제들이 어깨를 짓누른다. 한·몽 수교 25주년 새해 벽두, 민간과 정부를 통틀어 양국 최초로 진행된 수교 25주년 기념행사는 이렇게 저물었다. (시리즈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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