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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찾은 고향서 청국장으로 소중한 유산 남기고 파”

“다시찾은 고향서 청국장으로 소중한 유산 남기고 파”

기사승인 2015. 02. 2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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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기순 원진 노기순청국장 대표, 충남 로컬푸드 '미더유' 인증으로 도약
"장 담그고 음식 만들어 먹는 체험프로그램 운영 계획"
서브3-노기순2
노기순 대표가 ‘청국장 정식 상차림’을 선보이고 있다. 효소를 넣어 연하고 감칠맛 나는 ‘돼지갈비찜’과 직접 농사지은 나물과 갖가지 반찬들을 청국장과 함께 즐길 수 있다./사진=한수진
서울의 잘 나가는 식당을 뒤로한 채 귀촌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명품청국장이란 소중한 유산을 내 고향에서 집대성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이성을 앞섰다. 모든 게 낯설고 다른 환경 속에서 외로운 전쟁을 치룬지 7년, 이제는 거주지인 부여를 뛰어넘어 충남 지역을 대표하는 로컬푸드 식당으로 선정되며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바로 노기순 ‘원진 노기순청국장’ 대표의 이야기다. 현재 99㎡(30평) 규모의 식당과 5분 거리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며 남편과 아들까지 다 함께 귀촌생활을 하고 있다.

“부여는 태어나고 자란 곳이에요.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생을 사셨던 곳이기도 하죠. 그 집 마당에 장독대를 진열해놓고 방방마다 메주를 띄우고 효소를 발효시키고 있어요. 인근 텃밭도 매입해서 콩과 양념거리의 원재료가 되는 채소들을 심어 농사짓고, 그것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곳이 두레벗식품을 완성시키는 공장이면서 노기순청국장 맛의 보물창고라고 할까요?(웃음).”

안정적인 삶 대신 고향에서 새로운 도전 선택
노 대표는 원래부터 타고난 손맛의 장인이었다. 귀촌하기 전까지 똑같은 원진 노기순청국장이란 이름으로 20년 동안 서울 고대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해 왔다. 어머니가 해준 맛을 기억해 전통 방식대로 장을 담가 반찬을 만들고, 친척의 고깃집에서 일해 주며 터득한 기술에 특제 양념소스를 더한 숯불갈비를 선보이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승승장구하던 식당이 외환위기와 광우병 파동을 겪으며 휘청했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메뉴의 변화를 시도하다 지금의 청국장을 내놓게 된 것. 입소문이 나면서 다수의 공중파 방송출연까지 출연했을 정도다. 또한 서울맛집 50선에 선정되고 일본 아사히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는 등 그야말로 순탄대로였다.

“시골집에 내려가면 안방에 항상 메주를 띄우던 모습, 맛있게 청국장을 내놓던 어머니의 손맛이 생각난 거죠. 먹어만 봤지 직접 담가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부여와 서울을 오가며 부지런히 비법을 배우던 시절이었어요. ‘도시 사람들이 소박한 시골음식을 좋아해줄까’ 싶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식당을 빛나게 해준 일등비결이었던 거죠. 안정적인 삶이긴 했지만 조금 더 넓고 비옥한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다가 식품영양학을 공부했던 아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잠재돼 있던 갈증을 풀어보자고 결단을 내리게 된 겁니다.”

서브3-노기순 서브2
충남 부여군 초촌면 초촌로에 위치한 원진 노기순 청국장 매장. 작년 충남로컬푸드 ‘미더유’ 인증식당으로 선정되는 경사를 맞았다.
서브3-노기순 서브컷 3
노기순 대표가 장독대에서 된장을 그릇에 담고 있다.
본격적인 장류사업과 식재료 직접 생산 위해 귀촌 결심
원래부터 고향을 목적지로 선정하고 귀촌을 계획했던 게 아니었다. 식품공장 부지는 출퇴근 가능한 서울 인근 지역이 타깃이었다. 한마디로 도시생활을 이어갈 생각이었던 것. 그런데 장 담그기 좋은 환경을 찾기란 쉽지 않았고, 때마침 고향 친구가 지금의 건물을 소개하면서 계획이 전면 수정된 셈이다. 삶의 터전을 옮기고 귀촌하는 일이라 선뜻 결정하기는 어려웠지만, 환경적인 천혜의 조건이 노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반대하던 가족들도 그녀의 선택과 진심 앞에 믿음을 보이며 귀촌이란 배에 함께 오른 것이다.

운영하던 식당은 예전부터 일을 돕던 사촌조카에게 관리를 전적으로 맡기고 2008년, 드디어 부여에 발을 디뎠다. 식당 인테리어 공사부터 착수했다. 이어 밋밋했던 고향집은 황토를 덧입혀 보수를 하고, 밭에다가는 배추를 비롯해 양파·파·마늘 등 조리에 들어갈 채소들을 심었다. 뿐만 아니라 닭과 오리도 직접 사육하고 노 대표의 보물1호인 장독대들도 하나둘 고추장·간장·된장 등 각종 장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나갔다.

또한 노기순 건강밥상하면 빠질 수 없는 다양한 효소들도 담그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공간이 협소해 실행시키지 못했던 일이다. 매실,오미자, 여러 과일들, 약초들을 6개월 이상 발효 숙성시켜 완성되면 조미료대신 사용한다. 이로써 직접 기르고 만들어 내놓는 자급자족 시스템이 가동된 것이다.

별도의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식당은 찾아오는 손님들의 발길로 가득찼다. 지역 특성에 맞게 보양식을 포함시켜 메뉴 구성도 달리하고 곁들이는 음식의 가짓수도 풍성하게 내놨다. 식자재를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는 환경적 이점을 통해 얻은 이익을 고객들에게 돌려주는 정책이었다. 탁월한 맛을 자랑하며 장사와 농사 모두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의외의 곳에서 문제는 터져 나왔다.

서브3-노기순 서브컷1
서브3-노기순 시골집
노기순 대표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흙집을 황토집으로 개조해 된장과 효소를 만드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습도를 체크하는 모습.
도움 받을 마땅한 창구 없고 고객 성향도 달라 ‘우왕좌왕’
“고향인데도 떠나온 지가 오래되다 보니까 모든 것이 낯설더라고요. 마음을 터놓을 친구도 없고 문화생활을 즐길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으니 답답함이 쌓였어요. 거기에 동네 사람들도 도시 사람이라고 여겨 마음을 쉽사리 열어주지 않았죠. 그러다 귀촌인이여서 생긴 서러웠던 일도 있었어요. 유통 판매와 관련해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제도적 혜택들을 적용받고 싶어 관공서나 기술지원센터 등 사방곳곳을 뛰어다녔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더라고요. 정보가 없으니 유용한 팁과 혜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거죠. ‘내 식구’가 아니란 인식 때문에 누구하나 나서서 챙기지는 않았던 거였어요. 지금이야 성실하게 장사를 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모습을 보이니까 인식들이 점차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외로웠어요.”

뿐만 아니라 노 대표를 당황시키는 일들은 곳곳에 있었다. 일단 고객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손님응대를 20년 넘게 해왔던 베테랑에게도 농사를 기반으로 살아온 고향 토박이들의 기호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미션이었다. 서울에선 시골적인 밥상에 감격했지만 여긴 늘 먹던 생활 반찬이기 때문에 보양식 종류나 새로운 것들에 대한 니즈가 강했던 것. 그러다보니 메뉴 종류가 늘어나고 몸은 몇 배로 바빠졌다.

“가뜩이나 담그는 장의 양도 많아진데다 식재료 농사까지 지어야 하면서 일도 증가했는데 전보다 조리하는 음식의 숫자도 늘어나니까 잠시도 쉴 틈이 없더라고요. 그런 시스템으로는 오래 버틸 자신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던 중 우연히 신청했다가 충남로컬푸드 ‘미더유’ 인증식당으로 선정되면서 분위기 반전이 일어났어요. 고객층도 변화하고 이에 맞는 메뉴라인도 재정비하니까 효율성도 높아졌어요. 거기다 교육과 컨설팅을 통해 배운 합리적인 운영방법을 매장에 적용하면서 일하는 환경이 나아졌어요. 가장 좋았던 것은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과 정기적인 교류를 하면서 소통의 창구가 생겼다는 거에요. 많은 위안을 받고 있어요.”

대량유통 시스템 구축과 일반인 상대로 한 체험투어도 계획
청국장은 무르게 익힌 콩을 뜨거운 곳에서 납두균이 생기도록 띄워 만든 한국 된장이다. 노기순 대표는 이 방식 그대로 만들고 있다. 직접 농사짓는 우리 땅에서 나는 좋은 콩을 사용하고 볶음소금, 9가지 천연조미료만을 사용해 특화시켰다. 여기에 볏짚과 적당한 온도를 잘 유지시키고 발효시켜 내놓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것을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고 두레벗식품 회사를 만들고 유통채널을 다각화했다. 매장판매 뿐 아니라 온라인과 여러 단체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

“장 담그는 것을 함께 경험하고 농사지은 것으로 직접 음식을 해먹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고 싶어요. 계절마다 장 담그는 종류도 달라지고 밭에서 수확하는 채소들도 다 다르잖아요. 전통 문화 유산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소박한 바람입니다. 귀촌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니까요. 여기선 부지런하면 안되는 게 없어요. 뚜렷한 목적의식과 인내 그리고 부지런한 정신과 신체가 준비돼 있다면 귀촌에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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