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정감사 대기실에서 만난 이순병 동부건설 대표이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막대한 과징금의 영향과 취약한 재무상태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주산업인 건설업의 특성상 수주 실적만 계속 올릴 수 있다면 재무상태가 다소 취약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호언은 불과 몇 달만에 무색해졌다. 동부건설은 연이은 영업손실로 결국 지난해 12월 31일 법원에 기업회생절차(구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더구나 동부건설은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잠식률이 79.8%에 달한다고 지난달 27일 공시했다. 동부건설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55.9% 줄어든 8800억원에 그쳤고, 영업손실은 1550억원으로 전년대비 적자폭이 49.3%나 늘었다. 동부건설의 자본총계는 1년 만에 3501억원에서 540억원으로 급감했다. 자본잠식률이 50% 이상 2년간 지속될 경우 상장폐지된다.
수주가 우선이고 재무 안정성은 그 다음이라는 인식이 건설업계에 넓게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사업구조 개편이나 구조조정 시기를 놓쳐 법정관리로 넘어가기까지 한다.
수주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것도 법정관리 전까지나 가능한 일이다. 막상 법정관리가 시작되면 건축·토목부문 등 대부분의 수주가 어려워진다. 쌓아놓은 수주 실적으로 버티면서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부동산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곳간이 텅빈’ 건설사를 사려는 사람은 드물다. 현재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인 남광토건과 신일건업의 경우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자본잠식률이 각각 -158%,-453%에 달한다. 남광토건의 경우 작년 두 차례 인수합병 시도가 있었지만 불발되면서 언제 다시 M&A가 진행될지 모르는 상태다.
건설업에서 수주만 잘되면 만사 OK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선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국 발주 토목공사가 거의 사라지자 장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이나 해외건설로 활로를 찾는 상황이다.
결국 건설사들도 내실 경영 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수주만 잘 따내면 그만이라는 건설업계의 마인드도 변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