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심층취재] 잘못한 배우자 제기 이혼소송 성립할까

[심층취재] 잘못한 배우자 제기 이혼소송 성립할까

기사승인 2015. 04. 26. 15:08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간통죄 폐지 계기, 이혼 소송 '유책주의' 변화 조짐…실질적 결혼생활 '파탄주의' 중시 경향…유책 배우자 이혼소송 '대법원 판결' 관심 집중...부부 장기간 별거 중 외도는 '불법 아니다' 판결
이혼 소송 ‘유책주의’ 유지? ‘파탄주의’ 인정될까? 지난 2월 간통죄 폐지를 계기로 유책(잘못한 사람)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우리나라는 이혼소송 원칙과 관련해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에 따라 이혼 소송 또한 이미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면 잘못이 있는 배우자도 재판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하급심 법원은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재판상 이혼 사유 중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를 폭넓게 적용해 이혼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혼인 관계가 파탄 상황에 이르렀다면 부부의 혼인 관계상 의무를 일정 범위 안에서는 인정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회적 흐름에 따라 간통죄 폐지를 비롯해 이혼 소송에 있어서도 유책주의에서 실질적 결혼 생활을 중시하는 파탄주의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최근 이혼 소송과 결혼 생활의 사회적 흐름을 크게 바꾼 계기는 2월 26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62년 만에 이뤄진 간통죄 폐지다.

당시 재판관 5명은 정조 의무 위반이 비도덕적이기는 하지만 범죄가 되는 사항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간통죄는 형법상 불법 행위는 아니다. 하지만 외도로 인한 민사상 정조의무 위반에는 손해배상 책임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정상적인 결혼 생활 중에도 배우자 일방이 외도를 한 경우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이 이혼 사유가 되며 정신적 손해배상 책임(위자료)이 인정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별거처럼 부부의 결혼 생활이 실질적으로 파탄이 난 경우 외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해 11월 나왔다. ‘혼인파탄 후 제3자와의 성적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사건’으로 이혼 소송과 결혼 생활에 앞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혼인 파탄 후 부부 일방이 제3자와 성적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불법 행위 여부가 사건의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이 돼 별거 중인 상황이었다면 상대 배우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남편 A씨와 아내 B씨는 두 자녀를 키우며 불화를 겪던 중 A씨가 “우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니다”고 했고, 이에 B씨는 가출해 별거 생활을 시작했다. A씨는 아내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고 B씨는 7~8년 간의 별거 끝에 이혼 소송을 내 이혼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B씨는 등산모임에서 C씨를 알게 돼 친밀한 관계를 가져왔다. 이혼소송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서 A씨가 B씨의 집을 방문, 두 사람이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을 알게 됐다.

A씨는 “아직 처(B)와 이혼이 되지 않았는데 C씨가 처와 간통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해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고, C씨의 행위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며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비록 부부가 아직 이혼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부부 공동 생활이 파탄돼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라면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성적인 행위를 하더라도 부부 공동 생활을 침해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또한 부부공동 생활에 관한 권리가 침해되는 손해가 생긴 것도 아니므로 불법 행위가 성립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또 재판부는 “민법 제840조 6호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이혼사유로 삼고 있으며 부부 간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할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 생활 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혼인 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 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에는 이혼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며 “이에 비춰 부부가 장기간 별거하는 등의 사유로 실질적 부부공동 생활이 파탄돼 실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고 객관적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 생활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따라 별거 중 외도가 합법적이라고 여겨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제3자가 타인의 부부공동 생활에 개입해 파탄을 초래하는 등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 생활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면서 “제3자가 부부의 일방과 부정 행위를 함으로써 혼인의 본질에 해당하는 부부공동 생활을 침해하거나 그 유지를 방해하고 그에 대한 배우자로서의 권리를 침해해 배우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불법 행위를 구성한다”고 전제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실질적으로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면 파탄 이후 일방의 외도 행위가 부부공동 생활에 관한 침해를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 혼인 관계의 파탄뿐만 아니라 이혼 소송도 진행 중이었지만 재판부는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가는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부부 공동생활의 ‘실질적 의미’에 주목해 판단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이혼 절차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아직 법적 부부관계이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기존 법리 해석을 뒤집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혼소송 원칙과 관련해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상대방 배우자 유책이 인정돼야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 민법상 이혼 사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파탄주의는 책임의 여부와 상관없이 부부생활이 실질적인 파탄에 이르렀다면 양쪽 누구라도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간통죄 폐지에 따른 사회 전반의 흐름과 함께 이혼 소송 또한 이미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라면 잘못이 있는 배우자라고 해도 재판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 또한 파탄주의를 정면으로 다룬 것은 아니지만 혼인 관계가 파탄 상황에 이르렀다면 부부의 혼인 관계상 의무를 일정 범위 안에서는 인정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실질적 부부 생활 파탄에 주목한 점은 이혼 소송에 있어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변해 가는 최근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가 청구한 이혼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상태이다. 50년 만에 판례 변경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