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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아름다운 그녀 ‘오드리 헵번’ 탄생

[오늘, 그때]아름다운 그녀 ‘오드리 헵번’ 탄생

기사승인 2015. 05. 0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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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햅번
오드리 헵번
2015년 5월 4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실무기구가 국민 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50% 인상 등에 합의한 것과 관련 “이것은 공무원연금 개혁과는 다른 문제로 접근해야 할 사안이고, 국민 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문제”라고 밝혀습니다.

이에 향후 국회의 국민연금 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서 여야 합의를 강조하는 야당과 국민적 동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여권의 입장이 부딪히면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 1929년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 대전이 일어난 후 부모나 이혼해 어머니의 고국 폴란드에서 지냈는데요. 이 시절 그녀는 나치점령 하에서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 등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 시절의 수난과 가난이 그녀로 하여금 훗날 어린이들의 가난 구호에 앞장서게 한 것이라고 하네요.

오드리 헵번은 두 번 결혼했는데 1954년 영화배우 멜 파라와 결혼했으나 68년에 이혼하고, 2년 뒤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와 재혼했습니다. 그러다 1981년 이혼한 이후 그녀는 유니세프 홍보대사가 되어 에티오피아, 수단,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을 방문해 아이들을 돌보는 등 인도주의적인 구호 활동에 앞장섰습니다.

오드리 헵번은 1992년 9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소말리아를 방문한 뒤 대장암에 걸린 사실을 발견하고 11월 수술을 받았으나, 1993년 자택에서 63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편 유엔과 민간단체 ‘세계평화를 향한 비전’은 장기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인류애를 실천한 그녀를 기리기 위해 2004년 2월 ‘오드리 헵번 평화상’을 제정했습니다.

또 1919년 이날은 중국 북경의 13개 대학교 학생 약 3000명이 천안문 앞에서 집회를 가진 후 가두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른바 5·4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들의 시위는 1차 대전이 끝는 후 전승국인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이 파리 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이 갖고 있던 중국 산둥성에 대한 특권을 일본이 계승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대한 항의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에 분격한 베이징대학 학생들은 ‘밖으로 국권을 쟁취하고 안으로 국적을 정벌하자’ ‘21개조 취소’ 등을 외치며 시위르루 벌였습니다. 적국적인 항의시위를 벌여 민족 위기를 호소하고 국산품 장려, 일본 상품 불매 등을 외쳤는데요. 같은해 6월 군벌정부는 대규모 탄압을 감행, 학생 약 1000명을 체포했습니다.

또 인류가 기록한 최고의 문자가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도기가 파키스탄의 고대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됐다고 1999년 이날 영국 BBC 방송이 전했습니다. 문자가 새겨진 도기들은 4500년전에 번성했던 인더스 문명의 하라파 유적지대에서 발견된 것으로 표면에는 용기안의 내용물을 나타내거나 혹은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기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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