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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시존치 둘러싼 여ㆍ야 아이러니

[칼럼] 사시존치 둘러싼 여ㆍ야 아이러니

기사승인 2015. 05.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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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법시험 존치인가?
변호사 임제혁
임제혁 서울지방변호사회 대변인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현상은 여·야, 보수·진보 등의 진영논리로 설명이 가능하곤 했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편가르기였고 결국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귀결되곤 했다. 그런데 이 진영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사법시험 존치를 둘러싼 논란이다.

A는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지만 어릴적부터 법조인이 되고 싶었다. 어느 누구보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법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A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사법시험을 선택해야 할까 아니면 로스쿨을 택해야 할까?

A는 로스쿨을 택할 수 없다. 대학 졸업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로 A는 로스쿨 학비와 최소 3년간의 생활비를 모두 감당할 수 없다. 로스쿨 측에서 아무리 장학금이 많아졌다고 한들, 장학금의 액수와 지급여부는 매해 학교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 비추어보면 지금의 등록금 등 학비는 이미 A에게는 경제적 진입장벽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진영논리적 시각에서는 누가 사시존치를 찬성해야 했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않겠다. 다만, 사시존치와 관련해 여·야 진영은 우리가 통상 생각할 수 있는 대답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치 안정성보다는 사회적 유동성을 중시하는 진보진영에서 오히려 집안을 보고 입도선매마저 벌이는 로스쿨-변호사시험 제도를 반기면서 로스쿨 일변도를, 가급적 변화를 피하고 사회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진영에서는 ‘노력의 사다리’가 있어야 한다면서 A에게 고졸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자고 한다. 어느 순간 혼란스럽다.

진영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적어도 하나의 사회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바로 양측모두 과거를 돌아보고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을 계기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진심을 담은 것인지를 떠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어쨌든 합리적인 길로 가야 하고 과거에 결정된 일이라도 비합리적이라면 바꾸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사시존치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반면 얼마 전 참여연대는 로스쿨을 마치고 치르는 변호사시험을 정원제 선발이 아닌 순수자격시험으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법조인의 기초적인 소양을 가진 이들을 다수 배출해 국민이 사법 서비스를 보다 쉽게 받도록 하기 위한 사법 개혁”을 이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표는 고시촌을 방문해 “(고시생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로스쿨에서 그냥(학비를 다 내고) 다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장학제도가 많다”는 말을 남겼다.

여기서 야권에 되묻고 싶은 것이 있다. 정녕 로스쿨이 그 취지대로 운영되었는가? 2014년도 통계에 따르면 로스쿨의 연평균 등록금(입학금 제외)은 국립대가 1036만원, 사립대가 1920만원에 이른다. 아무리 장학금이 있다 해도 누구든 도전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닌 것이다. 로스쿨을 수료할 즈음 쓰는 이력서에는 출신 집안을 적을 수는 있지만, 정작 변호사시험 성적은 공개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시험도 못 붙는 실력인데 집안만 보고 유명펌에서 모셔가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야권의 선거 참패는 과거의 결정을 쇄신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 때문이다. 당시의 사회적 합의로 폐지하려한 사법시험이 시간이 흘러 되돌이킬 필요성이 생기고 선의로 도입한 로스쿨이 현실에서 부작용을 일으킬 때, 이를 냉철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하는 유연함이 야권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사법시험 존치에 다시 무게가 실리는 것은, 결국 집안배경, 재력을 떠나 자기의 노력만으로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제도 하나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대는 진영논리를 초월해, 공정성에 목마른 우리 사회의 요구사항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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