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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자 산재 인정, 하늘에 별따기

감정노동자 산재 인정, 하늘에 별따기

기사승인 2015. 06. 0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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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건수도 100건에 못미치고 그나마 인정은 최저 5건에 1건...아파트 경비원 40% 정신적 신체적 폭력에 노출
캡처
우리나라 감정노동 종사자의 산재 신청 건수 대비 산재 인정 건수/사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례가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신질환 산재 인정은 신청건수의 최저 20%에 불과하다.

2009년 59건 중 13건, 2010년 67건 중 14건, 2011년도 56건 중 12건, 2012년 75건 중 32건이었다. 일본의 경우 매년 1000~1200건이 신청돼 2009년 234건, 2010년 308건, 2011년도 325건, 2012년 475건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2013년 7월 발효된 근로기준법 시행령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의 업무상 질병 목록에 ‘업무와 관련하여 정신적 충격을 유발할 수 있는 사건에 의해 발생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가 신설됐다. 또한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았거나 업무상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 업무상 재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3월 KTX 검표담당 여승무원으로 근무했던 A씨의 우울증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통지했다. A씨의 업무상 질병의 산재 여부를 심사한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신청인의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중증의 우울증 에피소드에 대해 업무상 질병이다’고 결정했다.

A씨는 2006년 코레일관광개발에 입사, 검표 담당 승무업무를 하면서 수시로 고객에 의한 각종 감정적 요구·폭언·폭행·성희롱 등에 노출됐다고 한다. 아울러 상시모니터링제도·무릎응대서비스·2연속 왕복근무(투투근무)·불규칙한 스케줄·일방적인 휴일근무·각종 복지제도의 미비·불합리한 승진인사 등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다. 20명이 2개 방에서 숙박하면서 월 200시간이 넘는 근무를 했고, 주말에는 9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의 검표업무를 승무원 혼자 수행했다.

A씨는 당시 승객에 대한 검표업무 등을 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됐지만 회사는 아무런 보호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에도 상시적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발생했고, 발병 2개월 전에는 회사 관리자에 의한 민원에 대한 책임추궁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A씨는 결국 인하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우울증, 광장공포증’으로 진단을 받았고, 이에 대해 산재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앞서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한 아파트 근무 중 분신한 자살 고 이만수 씨의 사망 사건을 ‘업무상 재해’로 승인·통지했다.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판정서에서 “고인의 재해경위와 업무내용 등 관련 자료 일체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위원회의 정신건강의학과·직업환경의학과 등 전문가 의견은 ‘①업무 중 입주민과의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하여 기존의 우울 상태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능력을 감소시켜 자해성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②기존상병과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으나 업무상의 스트레스가 상당부분 인정 가능하다.

③업무수행과정에서 보여지는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할 때 업무적으로 누적된 스트레스가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되어 발병한 것으로 보이는 바,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사료됨’의 소견으로 업무와 고인의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위원 다수의 소견이다”고 명시했다.

이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경비노동자의 자살이 산재로 인정된 첫 케이스다. 2013년에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감시 단속직 노인근로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의 35.11%가 언어적·정신적 폭력을, 5.36%가 신체적 폭력을 각각 경험했다.

이처럼 많은 경비노동자들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신체적·언어적 폭력에 노출돼 있음에도 이들의 ‘감정노동’ 재해는 이 씨 사건 이전에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황주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5인은 지난달 ‘감정노동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의안 제안 이유와 관련,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숫자는 약 6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의 운영방식은 근로자에 대한 고객의 폭언·폭력 등을 업무 특성상 당연히 수반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근로자 개인의 문제로 한정 짓고 있다. 이로 인해 감정노동 종사자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건강장해 예방이 필요한데 반해, 인권 보호 등에 관한 사회 전체적인 인식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제안된 이 법률안은 국가와 사업주에게 감정노동 종사자의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할 의무를 부과한다. 뿐만 아니라 감정노동 종사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의 수립, 실태조사의 실시 및 사업주의 책임 등을 법률에 규정함으로써 감정노동 종사자의 인권과 건강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발의된 법률안의 주요내용에는 감정노동 및 감정노동종사자에 대한 정의가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감정노동 종사자의 보호에 관하여 국가·고용노동부 장관·사업주·고객 4가지 관점에서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국가는 감정노동자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그들을 인격주체로서 배려하는 시민의식을 확산시키는 시책을 마련할 의무를 부담한다. 사업주는 감정노동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감정노동자를 위한 복지시설 등을 마련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감정노동자의 고충처리 전담부서의 설치·운영 등의 사항을 이행하여야 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5년마다 근로환경 개선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하며, 고용현황 및 근로환경 등에 대하여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고, 감정노동종사자 보호센터를 설치할 수 있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감정노동자에게 폭언, 성적 수치심·굴욕감 등을 느끼게 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안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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