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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날조 숨기려고 김일성이 저지른 분서갱유

역사날조 숨기려고 김일성이 저지른 분서갱유

기사승인 2015. 07. 0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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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창간 10주년 특별기획, 종북의 뿌리 '김일성 바로 알기' 12편
노동신문
대부분의 북한 연구자들이 북한 연구의 교과서로 삼고 있는 공식자료 노동신문만 분석하면 북한의 제대로 된 실상을 알 수 없다. 북한의 진짜 실상은 북한 당국이 없애버리고 불태워버린 자료에 숨어 있다. 이런 사실은 노동신문에 나오지 않는다.
국내의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연구의 교과서로 삼고 있는 것은 북한의 ‘노동신문’이다. 10여년전 우리 정부가 햇볕정책을 펴던 시절 남북관계를 좌우했던 A씨는 “연구자 시절 노동신문을 한 트럭분이나 보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 북한 실상, 공식 자료로는 파악하기 힘들어

대다수의 북한전문가들은 노동신문이 북한에서 가장 공식적인 1차 자료이기에 이를 충실히 연구하는 것이 최고의 연구방법론이라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진짜 실상은 노동신문 등 북한의 공식자료는 ‘한 트럭’ 아니라 ‘두 트럭’ 분량이나 보아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북한의 공식자료들은 대부분 날조되거나 가공된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역사를 날조하다보니 곳곳에서 실제 진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역사조작과 왜곡을 숨기기 위해 진실을 알고 있는 숙청하거나 관련 자료를 없애는 일을 반복했다.

특히 북한은 ‘역사적 자료’를 한 데 모아 태우는 일을 반복했다.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인 셈이다. 김정기씨는 남로당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북해서 평양의 중앙통계국에 근무한 뒤 대남공작 요원을 양성하는 송도정치대학(松都政治大學)을 졸업한 인물이다. 그는 1963년 말 한국에 귀순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숨겨야 하는 사실은 철저히 없애버리기 때문에 이런 내막은 김정기씨처럼 거기서 산 경험자 이외에는 알 수 없다. 노동신문 등 공식기록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김일성과 박헌영
김일성과 함께 선 박헌영(오른쪽 안경 쓴 이), 김일성은 박헌영을 숙청하면서 그의 저작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다음 내용은 김정기(金定基)씨가 그의 저서 ‘밀파(密派, 1967년, 서울, 大英社刊)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 1953년과 58년 2차례 진행된 책 불태우기

‘평양에는 수시로 분서령(焚書令)이 내려진다. 내(김정기)가 처음 분서령을 받은 것은 전쟁 말기(1953년 경)였다. 중앙당회의에 참가했다가 돌아온 당위원장은 중앙통계국 직원 전원을 비상 소집했다.

‘오늘 당 중앙에서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 기관이나 또는 개인의 책 속에 끼어 있는 다음 인물의 논문, 기사, 저서들을 전부 모아 내일까지 당 사무실로 가져오시오. 소각 대상의 저자들은 다음의 인물들입니다.

박헌영, 이강국, 이승엽, 조일명, 임화, 박승원, 설정식, 김광우, 배철, 이원조, 김남천, 이재우 등 40여명을 지적하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 썼다. 모두가 남로당계로 숙청된 인물들이었다. 이들의 저서를 ‘박헌영 반동 작품’이라고 했다. …

나는 어느 ‘여성 동무’와 도서실 안에 잇는 잡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근로자’와 작가동맹 기관지 ‘문학’을 한 권 한 권 펴보았다. 어느 달 잡지에도 이들 ‘반혁명 분자’의 글이 없는 달이 없다.

박헌영, 조일명, 이원조의 것은 그 누구보다도 많았다. 잡지 한 권 속에서 이들의 논문이나 수필 등을 뜯어내고 보니 잡지의 절반 이상이 달아나서 알맹이 없는 책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당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다. … 우리 도서실에서도 수백권의 책이 나타났다.

그 다음날 아침 사무실 앞에 직원들이 집에서 가지고 온 서책들을 여자 비서가 접수한다. 산더미처럼 쌓여져 갔다. 당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불이 질러졌다. 불이 타올랐다.

그 다음부터는 이 소각 대상자들의 출판물을 누군가 소지한 것이 발각되기만 하면 그것이 또 하나의 반혁명 사건이었다.

김정기씨의 이 회상으로 북한에서는 벌써 1953년께부터 ‘김일성 반대자’의 책은 불태워지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정기씨는 또 이렇게 회상한다.

‘제 2의 분서는 소위 8월 반혁명음모 사건에 대한 공개가 있은 뒤 1958년 경이다. 당?행정기관?학교에 지령서가 하달됐다. 1945년 해방 후부터 1958년까지 반당계의 전체 출판물을 색출하라는 것인데 보통 일이 아니었다.

최창익이 교재로 출판한 ‘조선민족해방투쟁사’라든가 박창옥의 논문, 김승하의 논문, 김두봉의 사진과 이들의 출판물을 태운다는 것은 각 기관 도서의 3분의 1을 소각하는 것과 다름 없다. 김두봉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 10여년을 지냈으니 회의마다 사진이 나와 있어 그 사진도 모조리 찢어내야 했다. … 북한에서는 1945년 해방 후부터 1963년까지 이렇게 과거 유명했다가 ‘분서’ 대상이 된 사람만 140명이나 된다’

김정기씨는 1953년과 1958년 등 50년대에 두 번씩이나 있었던 ‘분서 사건’에 대해 증언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반대한 공산주의자들 곧 국내파·남로당파·연안파·소련파 인물들의 서적과 문장은 해당 인물들과 함께 모두 북한 땅에서 사라졌다.

세기와 더불어
날조된 역사로 서술되어 소설과 다름 없는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김일성은 북한 내부에서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그들의 저작물을 모두 소각한 뒤 창작 소설과 다름 없는 자신의 회고록을 만들었다.
◇ 김일성, 50년대 북한 ‘책 없는 국가’로 만들어

공산주의자들의 서적이 이렇게 되었다면 그 이전에 집필된 책들은 운명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조 시대의 봉건서적, 일제 식민지 시대의 자본주의적 서적, 해방 직후의 비공산당적 서적은 모두 사라졌다. 이 책들은 모두 불태워졌다. 그리고 또 한국전쟁 와중에 모두 사라졌다.

김일성은 해방 전에 만주와 소련에 있었으나 본인 저서는 없다. 북한 땅에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 서적이 많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김일성은 1950년대에 북한을 책다운 책이 없는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1960년대가 되자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하는 사업을 사정 없이 진행한 결과 김일성과 그 일당의 서적 이외에는 출판할 수 없게 되었다.

1970년대가 되면 북한에서는 문화예술 창작에서도 ‘종자론(種子論)’이란 해괴한 이론까지 나온다. 이 종자는 작품의 핵으로서 작가가 말하려는 기본문제와 형상의 요소들이 뿌리 내릴 바탕이 있는 생활의 사상적 알맹이라는 것이다.

이 종자론에 따르면 작가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또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모티브와 테마, 플롯 등은 모두 ‘종자’라는 애매한 개념에 묶여 버린다. 그리고 이 ‘종자’는 당의 소유다.

◇ 북한 실상, 불태워진 자료에 숨어 있어

당이 ‘종자’를 쥐고 있으므로 그 소작인 같은 작가는 자기 집에서 창작할 수 없다. 평양 같으면 ‘평양 창작실’에 출근하고 작가동맹의 간부 당원이 지켜보고 있는 장소에서 ‘창작’을 한다. 그래서 서정시 한 편을 지어도 합평회에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때문에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불태워지고 없어진 자료를 뒤지고 찾아서 읽어야한다. 그런 자료들에 북한의 진짜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대다수 북한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날조되고 가공된 자료를 철석같이 믿고 북한을 분석한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매일 국내 언론들은 이런 연구자들을 상대로 열심히 멘트를 따고 분석을 의뢰한다. 북한 연구와 기사 쓰기 풍토에서 절실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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