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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극적 재구성] 비 오던 ‘그날’, 4남매 아빠는 죽고 ‘엄마’같던 맏딸은 중환자실로

[기사의 극적 재구성] 비 오던 ‘그날’, 4남매 아빠는 죽고 ‘엄마’같던 맏딸은 중환자실로

기사승인 2015. 07. 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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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상태에서 운전하던 윤모(52)씨가 큰딸을 데리고 집으로 귀가하던 가장의 경운기와 사고를 내 경찰에 붙잡혔다. 경운기 운전자는 사망했고 큰딸은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다. /사진=픽사베이

 

당신, 꼭 지금 나가야겠어? 애들도 생각해야지  

 

나 아는 언니가 좋은 곳에 취직시켜준다고 했어요 

 

“4남매 중 맏이가 초등학생이야. 얘들에겐 엄마가 필요하다고. 내가 농사짓는 걸로 떵떵거리고 살진 못하지만, 우리 부족하진 않잖아

 

몰라요. 난 나가서 일을 구할 거예요. 애들도 넷이나 나았잖아요. 농촌 말고 도시로 나갈 거예요. 연락 할게요

 

그렇게 외국인 아내가 집을 나갔다. 처음 몇 달은 연락이 되더니 몇 해 전부터는 거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극심한 가뭄에 쩍쩍 벌어지는 논바닥을 보며 드는 애타는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마흔이 넘어 만난 외국인 아내였다.

 

최씨와 아내는 4남매를 낳았다. 두 딸과 두 아들이 뛰어노는 소리는 힘든 농사일을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내는 큰딸이 중학교에 가기도 전에 취직을 한다며 집을 나갔고 몇 년 째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진=픽사베이

 

경운기가 털털털 소리를 내며 빠르게 논길을 움직였다. 해가 질 때쯤 집에 도착한 최씨는 땀에 찌든 옷을 벗고 마당에서 세수를 했다. 기둥과 기둥을 이어 만든 빨랫줄에 아이들과 최씨의 옷이 걸려있었다.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맏딸이 학교가기 전에 널어놓고 간 것이었다. 엄마가 있을 땐 응석받이였던 맏딸이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갔다. 동생 셋을 챙기고 집안일을 알아서 해냈다. ‘너무 일찍 커버린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최씨는 늘 가슴이 아팠지만 큰딸이 집안일을 도우니 사실은 큰 힘이 됐다.  

 

널려진 빨래를 걷어 마루에 놓고 하늘을 쳐다보니 어둑어둑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었다.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맏딸이 걱정돼 전화를 걸었다.

 

아빠다! 아빠 왜? 나 학교예요. 기말고사라 남아서 공부 하고 있어요. 진짜? 아빠가 데리러 온다고? 정말?”

 

큰딸은 유독 최씨의 전화를 반겼다. 최씨도 기쁜 마음으로 다시 경운기의 시동을 걸었다. 

 



/사진=픽사베이

 

최씨가 경운기를 몰고 큰딸의 중학교로 향하던 시간, 읍네 중심가에서 술을 마시던 강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 박 형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뭐하고 살려고? 뭘 하든 잘 살아? 알겠어?! 내가 박 형 좋아하는 거 알지? 딴 곳 가서 일해도 종종 연락하고!” 

강 씨, 집에 가게? 술도 얼큰하게 먹었는데, 차 놔두고 택시타고 가

요 쪼그만 동네에 차도 없는데 뭘 택시야. 나 안 취했어! 내 알아서 조심히 갈게. 걱정마

 

휘청거리며 일어서는 강 씨를 동료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말리는 사람을 뒤로하고 강 씨가 1톤 트럭의 시동을 걸었다.

 

뭐야? 비오네? 우산도 없는데 비까지 오고 난리야

 

강 씨는 흐릿한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차를 몰았다. 갑작스런 비에 기온이 떨어져 추위를 느낀 강 씨가 자동차의 히터를 틀었다. 따듯한 바람이 강 씨의 취기를 한층 오르게 했다. 

 



/사진=픽사베이

 

빗방울이 차츰 굵어지던 때 최씨가 중학교 앞에 도착했다. 딸아이를 데리러 우산을 쓰고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아빠! 고마워요. 나 아빠가 데리러 와서 너무 좋아 

우리 딸, 밥은 먹었어?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도 사먹으면서 공부해야지.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늦게까지 공부하면 아빠한테 전화해. 데리러 갈게. 알았지?”

 

최씨는 큰딸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으며 경운기까지 걸어왔다.

 

딸 비오니까 우산 쓰고 꽉 잡고 뒤에 타. 알겠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운기가 학교 앞을 빠져나왔다. 최씨는 최씨대로 비까지 내려 어두워진 도로를 보며 경운기를 몰았고, 큰딸은 우산을 쓴 채 아빠의 등을 보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사진=픽사베이

 

비 오던 그날 

비를 맞으며 경운기를 모는 아빠와 위태롭게 우산을 쓴 채 뒤에 앉은 딸.

히터의 따듯한 바람에 더욱 취기가 오른 채 1톤 트럭을 몰고 집으로 향하던 강씨.

 

그 셋은 비오는 그날 밤, 그 도로에서 마주쳤다. 잠시 후 경운기를 미처 보지 못한 강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달리던 경운기의 뒤를 들이받았다.

하는 소리도 나오지 않은 그 찰나, 최씨와 큰딸은 쇠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사진=픽사베이

 

최씨의 남겨진 세 아이들은 순진무구한 얼굴로 팔순이 넘어 거동조차 불편한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따라갔다.  

 

장난치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흑백의 아버지 사진이 놓인 장소였다. 사진 속 아버지는 온화한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은 텅 빈 장례식장이 세 아이들에겐 낯설었다. 

 

할머니, 언니는 어딨어? 아빠 사진은 왜 여기 있는 거야?”

 

먼저 도착해 장례준비를 하던 최씨의 동생이 그 소리를 듣자 오열하며 울었다. 형의 큰딸이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최씨의 동생이 떠올렸다.

 

엄마의 빈자리를 대신하던 큰딸은 장례식장 건물 옆 동의 중환자실에서 아빠의 죽음도 모른 채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세 아이들도 뭔가 슬픈 기운을 감지했던지 장난기 있던 얼굴이 사라지고 이내 구석에 조용히 앉았다.

 

그렇게 세 아이들은 갑작스런 삶의 변화에 준비할 틈도 없이 흑백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 앉아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큰 누나의 빈자리를 느껴야했다.  

 

/사진=픽사베이

 

<기사 원문> 

큰딸과 함께 경운기로 귀가하던 50대 가장이 음주운전 차량에 받혀 목숨을 잃었다. 

 

충북 옥천경찰서는 비가 내리는 날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김모(58)씨와 그의 딸(14)이 타고 있던 경운기와 사고를 낸 혐의로 윤모(52)씨를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이 사고로 김씨가 숨지고 그의 딸은 갈비뼈 등이 부러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김씨는 기말시험을 준비한다며 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던 중학생 큰딸과 함께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사고를 당했다.

윤씨가 직장동료의 송별식에서 술을 먹고 만취한 상태로 운전했고 비까지 내려 앞서가던 경운기를 발견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였다.

 

평소 김씨의 딸은 몇 년 전 직장을 구하겠다며 집을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 3명의 동생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아 해온 효녀였다.

 

그녀의 담임교사는 “3명의 동생을 돌보는 힘든 상황에서도 언제나 명랑하게 친구들과 어울렸고, 공부도 제법 잘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사고를 낸 윤씨를 특가법상의 위험운전 치사상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기사의 극적 재구성] 실제 사건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 한 기사입니다. 따라서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명입니다. 재구성한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투톡톡] 아시아투데이 모바일 버전에서는 '기사의 극적 재구성'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m.asiatoday.co.kr/kn/atootalk.html#2015.07.02 

  

아시아투데이 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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