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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세계유산 등재…‘논란부터 강제노동 명시까지’

일본 세계유산 등재…‘논란부터 강제노동 명시까지’

기사승인 2015. 07. 0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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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모스·독일이 ‘전환점’ 만들어…강제성 인정 막판 '진통'
하시마
일본 나가사키 현에 위치한 하시마 섬 /사진=KBS 캡쳐
한·일간 진통을 겪던 일본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가 5일 최종 마무리됐다. 총 23곳 중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가진 7곳에 관련 사실이 최종 담기기까지 양국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외교전을 펼쳤다.

실제 양국이 이날 회의가 진행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면서 협상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양국이) 수도 없이 서로 공방하면서 굉장히 지루한 싸움을 했다”며 지난했던 교섭 과정을 시사했다.

◇ 한·일제외 세계유산위 19개 위원국 전방위 설득전…정상외교도 가동

강제징용의 역사를 드러내려는 한국과 감추려는 일본은 유산 등재 결정권을 쥔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을 상대로 그간 전방위적인 설득전을 벌였다.

일본은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규슈(九州)·야마구치(山口) 지역의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에 올리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1월 등재신청서 제출로 공식화했다.

올해 3월 나온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의 등재 권고 판정과 함께 그간 수면 밑에서 진행되던 양국의 외교전도 본격화했다.

각국 외교당국 차원의 접촉은 물론, 정상회담에서 의원외교까지 한·일 양국의 외교력이 총동원된 드문 ‘진검승부’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페루·콜롬비아 방문을 포함해 위원국 정상들과의 접견에서 이 문제를 직접 거론했고, 지난달에는 19개 위원국 정상에게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측면지원을 했다. 나경원 국회 외교통일위원장도 각 위원국 의회 외교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또 일본을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이 채택되기도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의장국 독일을 비롯한 위원국 외교장관들을 만나 설득했고 과거사 관련 비정부기구(NG0)도 강제징용의 피해를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국회와 함께 국내외 민간단체가 적극적으로 측면지원에 나서는 등 협업 체제가 효과적으로 기능했던 것도 이런 결과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도 위원국들에 정부 고위인사를 파견해 등재추진에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의장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 3월 방일했을 때 “한국에 (등재) 거부권을 갖게 해도 좋은가”라고 견제한 것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 이코모스와 독일이 만든 두 번의 ‘터닝포인트’

우리 정부의 잇따른 우려 제기에도 꿈쩍하지 않던 일본을 움직이는 데는 크게 두 가지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첫 번째 반전의 계기는 지난 5월 공개된 이코모스의 ‘전체 역사’(full history) 권고였다.

우리 정부가 심의 과정에서 세 차례 보낸 의견서 등을 감안, 이코모스가 권고 보고서에 “각 시설의 전체 역사(full hisory)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의 분위기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인권’과 ‘역사적 진실’의 문제라는 한국의 설득에 위원국들의 입장이 조금씩 돌아서면서, 양국이 타협을 통한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마련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도 강제노동이 이뤄진 7개 시설을 등재해선 안 된다는 데서 강제노동 반영 쪽으로 강조점을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5~6월 열린 한·일간 양자협의에서도 소극적이었던 일본을 움직인 두번째 ‘터닝 포인트’는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 독일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세 장관의 독일 방문(6월12일) 계기에 열린 외교장관 회담에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컨센서스를 이룰 수 없다면 아예 심의를 연기할 수도 있다는 반응을 독일 측이 보인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일본 측에도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일본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같은 달 21일 열린 외교장관 회담에서 입장을 선회, 강제노동 반영에 큰 틀에서 합의했다.

◇ 한·일, ‘강제노역’ 표현에 막판까지 공방…벼랑끝 극적 타결

그러나 양국이 합의점을 찾는 과정은 끝까지 쉽지 않았다. 조선인들이 해당 시설에서 ‘강제’(forced) 노역을 당했다고 표현할 것인지가 막판까지 쟁점이 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측은 강제성 명시를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일본은 끈질기게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개막한 이후에도 양국은 이 문제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막판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독일 현지에 체류하는 한·일 대표단은 물론 서울의 외교부와 도쿄의 외무성 간에도 전방위적인 접촉이 진행됐다. 이달 말에는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심의관(차관보급)이 비공개로 방한, 세계유산 문제에 대해 우리 당국자들과 연이틀 협의를 갖기도 했다.

일본 산업시설의 심의가 예정된 4일(현지시간)까지도 양국이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하자 대표단 내부에서도 “오리무중(in the dark)”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표 대결이나 자유토론 등 전례없는 상황이 결국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왔다. 상당수 위원국들은 한·일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심의를 다음 회기로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양국에 협상 시간을 주고자 의장국 독일은 심의를 5일 오후 세션으로 연기하는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일 양국은 결국 극적 타협에 성공했고, 일본의 ‘강제노역 인정’과 함께 양국의 지난했던 외교전도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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