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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인종차별 갈등 폭발’…美 디트로이트서 흑인 폭동(7월 23일)

[오늘, 그때]‘인종차별 갈등 폭발’…美 디트로이트서 흑인 폭동(7월 23일)

기사승인 2015. 07. 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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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2015년 7월 23일은 중복이자 대서입니다. 대서는 소서(小署)와 입추(立秋) 사이에 있는 절기로 음력으로는 6월, 양력으로는 이 시기쯤인데요. 우리나라에서 대서는 중복에 해당하는 때로 장마가 끝나고 더위가 가장 심한 시기입니다.

흔히 말하는 ‘삼복더위’도 이 시기를 뜻하는데요. 이번주에는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27일쯤 강원 영동을 제외한 중부지방과 일부 남부지방에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1967년 이날은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사상 최대 흑인폭동이 일어났습니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분단’의 도시였습니다. 분단의 한가운데를 ‘8마일 로드(eight mile road)’가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1920년대 흑인들이 남쪽 도시 중심부로 몰려들자 백인들은 이 도로를 건너 북쪽 외곽지역으로 옮겨갔다. 8마일 로드는 인종의 경계선인 셈이었죠.

흑인들의 암울한 삶이 보기 싫었을까. 1950년대 초 백인들은 8마일 로드를 따라 2m 높이의 두꺼운 콘크리트 차단벽을 설치했습니다. 백인들은 안도감을 얻었고 흑인들은 절망감을 얻었습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인종갈등의 용광로는 1967년 7월 23일 폭발했죠.

이에 백인 경찰이 무허가 술집을 단속하면서 흑인 손님 80여명을 모조리 체포했습니다. 항의 시위는 대규모 폭동으로 번졌고, 닷새 동안 43명이 죽고 1000명 이상이 다쳤습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흑인폭동이었습니다.

흑인 청년은 ‘억압을 받는 환경을 없애려면 폭력이라도 사용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연방군이 투입된 디트로이트시는 27일 밤 저격수들과의 총격전이 그치고 폭동발생 5일만에 점차 평온을 돼 찾았습니다.

또 1931년에는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신장염과 고혈압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1899년 서울 종로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조실부모해 고아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불우한 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얘기꾼으로 소년들을 끌어 모았고, 이 얘기들이 소년들에게 인기를 끌자 ‘소년 입지회’를 만들 정도로 운동가의 기질을 일찍부터 보여줬습니다.

그는 순수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매년 5월 첫재 일요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는 어린이 사랑에 대한 활발한 노력을 하다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이날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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