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오늘, 그때]서울의 상징 ‘63빌딩’ 준공(7월 27일)

[오늘, 그때]서울의 상징 ‘63빌딩’ 준공(7월 27일)

기사승인 2015. 07. 27. 14:28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63
63빌딩
2015년 7월 27일은 정부가 내년부터 4인가구 기준 월소득이 127만원 이하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220만원 이하면 교육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주거급여는 189만원, 의료급여는 176만원 이하의 월소득 가구에 각각 지급되는데요. 내년 정부 복지 정책의 기준점이 되는 기준 중위소득이 올해보다 4.0% 증가한 월 439만원으로 결정된 데 따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1985년 이날, 동양 최고를 자랑하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이 우뚝 섰습니다. 지상 높이 249m에 지하 3층, 지상 60층, 연면적 16만 6000m, 해발 높이 264m로 남산보다 1m 낮고, 당시 동양 최고 빌딩이던 일본 도쿄 선샤인 빌딩보다 25m 높았습니다.

이날 아침부터 몰려든 관람객들로 지하 3층, 지상 60층 건물은 하루종일 인파로 북적거렸는데요. 관람객은 모두 3만여명이었습니다.

서울을 대표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63빌딩은 수족관과 국내 최초 아이맥스 영화관, 전망대를 갖춘 도심 속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도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또 1953년 이날, 6·25 전쟁(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3년1개월 만에 정전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이날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유엔군 대표인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군 대표인 남일 대장이 정전협정문을 교환했습니다.

정전협정 서명자는 클라크 사령관과 김일성 분한군 최고사령관, 펑더화이 중공 인민지원군 사령관 세 사람이었습니다. 정전협정문에 교전 당사국인 한국의 서명은 없었습니다.

1951년 7월 10일부터 2년간 이어진 정전협상은 역사상 가장 긴 정전협상으로 꼽히는데요.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미국은 1951년 5월 31일 조지 케넌 전 국무주 실장을 야코프 말리크 유엔 주재 소련 대사에게 보내 휴전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하지만 1년 넘게 포로 교환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 협상이 이어졌습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양측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전협정은 남북이 전향 포로를 석방한 뒤 1953년 7월 19일에야 최종 타결됐습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