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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인턴기자의 눈] 일본과 독일, 서로 다른 역사에 대한 판단과 선택

[대학생 인턴기자의 눈] 일본과 독일, 서로 다른 역사에 대한 판단과 선택

기사승인 2015. 07. 3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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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김혜수 대학생 인턴기자
눈물을 흘리며 껴안고 있는 두 노인이 알고 보니 400만명의 대학살이 이뤄진 아우슈비츠의 경비원과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라면? 우리에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독일의 한 법정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15일 독일 뤼네부르크 법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집단수용소에서 나치 독일의 경비원으로 약 30만명의 학살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오스카 그뢰닝(94)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뢰닝은 평결을 앞두고 마지막 진술을 통해 “아우슈비츠는 누구도 협력해야 할 곳이 아니었다”며 “그 사실을 좀 더 일찍이 깨달아 단호하게 변화시키지 못한 것을 진정으로 뉘우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징역 4년의 선고 결과가 나오자 70명의 공동 원고 중 한 명이었던 아우슈비츠 생존자 에바 모제스 코르(81)는 “독일 법원의 이 같은 판단에 실망했다”며 “그뢰닝을 감옥에 보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코르는 “법원이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며 “법원은 그가 감옥에서 보내는 4년이 누구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지 나를 포함한 생존자들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코르는 재판 도중 “그뢰닝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있으며 나는 그를 진심으로 용서한다”며 그뢰닝이 아우슈비츠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증언한 의지에 대한 감사를 전했다.

역사에 대한 책임을 실천하는 독일 정부와 코르의 감동적인 용서가 이뤄지기 열흘 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졌다. 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시설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된 직후, 일본 가시다 외무상은 도쿄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선인 ‘강제노동’을 사실상 부정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 중 하나인 하시마 탄광은 일제 강점기 당시 하시마 섬 내부 지하 1km가 넘는 곳에 있는 해저 탄광이었는데,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 탓에 ‘감옥 섬’으로 불렸다. 하시마 탄광에 조선인이 유입된 것은 1917년경으로 추정되며, 이후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동원된 조선인의 수는 해마다 늘었다. 당시 강제 동원된 수백명의 조선인은 비인간적 환경에서 고통을 겪었으며, 외부와도 철저히 격리된 채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광부 122명이 숨졌다는 보고서가 있다.

일본 정부는 하시마 섬을 포함한 메이지 산업시설 23곳에 대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논란의 중심이 됐던 것은 조선인 강제노역 인정 여부였다. 하지만 결국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국제법상 ‘불법 강제노동’의 의미를 담고 있는 ‘forced to labor‘라는 표현 대신 ‘forced to work’(일하기를 강요받다)라는 표기를 선택했다.

과연 강제로 징집돼 바다 한가운데 감옥 섬에서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이 강요받은 것은 노동이었을까, 생존의 포기였을까.

역사는 기록됐을 때 그 힘을 얻는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에 대한 개인의 고뇌를 다룬 이병주의 소설 ‘변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선인(善因)엔 선과(善果)가 있고 악인(惡因)엔 악과(惡果)가 있어야 한다…. 고발해야 할 일을 고발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의 겁타(怯惰)만으로서 끝나는 노릇이 아니고 인과의 섭리를 어긋나게 하는 범죄행위이며 증언해야 할 것을 회피하는 것은 섭리의 법정에서의 위증 행위가 된다….’

독일과 일본. 역사에 있어서 두 국가의 섭리란 너무나 대조적이다. 자신들의 악인과 악과를 인정하고 책임지려 하는 모습과, 기념비적인 유산으로 남기려는 모습이 비단 과거의 역사에 대한 태도에서 그칠 것인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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