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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신촌 길거리 말 거는 여자분 따라가 보니…“저기요, 학생!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르포] 신촌 길거리 말 거는 여자분 따라가 보니…“저기요, 학생!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기사승인 2015. 08. 08.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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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분이 다음날 보내 온 문자메시지. /사진=휴대전화 캡처
“저기요, 학생!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타고난 복이 많으신데 잘 활용을 못하시는 것 같아 아쉽네요.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복 까먹지 말라고….”

가끔씩 마주치던 여자분이 말을 걸어왔다. 평소엔 다른 남자랑 다니시던데 오늘은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자와 함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았으면 ‘죄송하다’며 급히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어제만 해도 세 시간을 기다렸는데 결국 만남이 수포로 돌아갔고, 오늘도 두 시간 만에 겨우 만난 사람들이 아닌가.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신촌역에서 이대역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주 마주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신촌에서 학교를 다니는 기자의 대학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둘에 하나 꼴로 붙잡혀 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근처의 학생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항간에는 그들에 대한 다양한 소문들이 떠돈다. 다단계 조직이라는 말도 있고 사이비 종교 사람들이라는 말도 있다. 용기를 내 잠시 그들을 따라갔다가 이상한 건물로 데려가는 것을 보고 놀라서 도망친 친구에 따르면 인신매매 단체인 것 같았다고도 한다. 어찌 됐건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쯤은 마주치지만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일을 이번에 해보았다. 큰 두려움을 억누르며 그들을 따라가 본 것이다.

그들은 “일평생 단 한 번 부모님을 위해서 효도를 하고 가시라”고 했다. 나무에도 뿌리가 있듯이 집안의 뿌리는 조상이기 때문에, 조상의 한을 풀어드리고 뿌리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상님 전에 정성을 드려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학생은 원래 이쪽 길을 지나다닐 사람이 아닌데 우리가 우연히 딱 마주치게 된 것은 조상님이 이러한 만남의 계기를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말했다. 신촌 지역 대학생으로서, 항상 지나다니는 길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의심의 눈초리를 흘렸나 보다. 그들은 “우리의 껍데기를 보지 마시고 내면을 보아 말을 믿어보라”고 당부했다.

“그러면 정성을 드리는 것은 그냥 가서 하면 되는 건가요?”

“정성은 일평생 한 번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간단히 물만 올리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적어도 바나나, 떡과 같은 값은 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남는 돈은 조상님께 바치거나 재단 법인을 통해 사회에 환원을 한다고 했다. 다음의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하늘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학생에게 사기를 치겠어요.”

구체적인 금액에 대해 묻자 잠시 미묘한 기류의 변화가 느껴졌다.

“양심적으로 말해 학생이 지금 하시다면 얼마정도 할 수 있으세요? 요즘 학생이라고 해도 뉴발란스, 나이키 등 메이커 많이 신거든요. 자기한테 투자하는 건 쉬운데 조상들에게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원래는 쌀 세 가마니, 66만원을 하는 게 좋은데 그 정도의 돈이 없으면 적어도 나이만큼, 그러니까 22만원은 해야 하죠.”

그러나 다행히(?) 내 수중에 현금은 4만2000원이 전부였다. 지갑을 꺼내서 보여주자 잠시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다시 표정을 다잡고 “카드에서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은 얼마냐”고 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 커피를 사 마시고 카드를 긁었는데 잔액이 부족해 계산이 안 되었다”고 말하자 이내 체념한 듯 했다. 그리고 “그러면 적지만 있는 돈이라도 정성을 드리자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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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분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자 나온 작은 골목길. /사진=안재우 대학생 인턴기자
그들을 따라서 20~30분 걷자 작은 골목길이 나왔다. 평소에 와본 적이 없는 거리로 몇 분간 들어가니 허름한 건물이 나왔다. 그들이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선뜻 낯선 사람 두 명을 뒤에 두고 들어가기가 머뭇거려졌다.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겠거니’ 생각하고 큰맘을 먹고 들어갔다.

계단을 따라 꼭대기 층인 4층으로 올라가자 문도 없고 플라스틱, 천과 같은 물체로 막혀있는 입구가 나왔다. 신발이 몇 켤레 놓여있는 걸로 봐서 안에 사람들이 몇 있는 듯 했다. 입구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일반적인 가정과는 달리 기본적인 가구만 몇 개 놓여 있었고 대여섯 명의 남녀가 앉거나 서서 각자 일을 보고 있었다. 나는 입구 쪽의 작은 방으로 안내돼 들어갔다.

안내된 방에는 어떤 중년의 여자분이 앉아 있었다. 그 분은 40여분 동안 종이에 써내려가며 옥황상제, 음양사상, 저승사자 등 다양한 내용에 대해 얘기했다.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가 같은 유일신을 두고 무의미하게 싸운다”는 비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나선 ‘귀신을 본 경험이 있는가’, ‘가위에 눌려본 적은 있는가’ 등의 질문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조상님이 천상계로 가지 못하고 갇혀 있어서 우리 몸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조상님을 편히 보내드리기 위해 정성을 드려야 한다”고 말하며 내게 흰 옷을 주었다.

흰 옷으로 갈아입고 한 여성을 따라 건물 맨 안쪽의 방으로 안내받았다. 그 방에 들어가니 향냄새가 진동했다. 복배, 평배, 향납읍의 세 가지 절에 대해 배웠고, 절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원 많고 한 많은 조상님, 구천에 가서 평온하시옵소서’라고 되뇌라고 당부 받았다. 30여분의 의식 속에는 절을 비롯해 한자로 길게 쓰여 있는 종이를 태우는 절차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자분은 묵념할 때 5분여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을 되뇌기도 했다.

정성을 드리는 과정이 끝나고는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제사상의 음식을 먹게 했다. 지난 두 시간 동안은 공포심을 어떻게든 억누르긴 했지만 음식을 먹으라고 하자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래도 묻고 싶은 것이 남았기에 두려움을 참고 밤, 배, 떡, 술 등을 조금씩 받아먹었다.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을 보이자 40분간 강의를 해줬던 여성이 혹시 궁금한 것은 없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혹시 하루에 몇 명 정도 다녀가는지’, ‘온 사람들은 끝까지 절차를 다 이행하고 가는지’ 등을 물었다. 많을 때엔 하루에 3~4명도 따라오고, 1명도 안 오는 날도 많다고 했다. 따라 오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바쁘다고 20~30분 정도로 짧게 하고 가기 때문에 1시간이 넘도록 같이 남아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했다.

“오늘 밤에 꿈을 꾸게 될 거에요. 그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만나면 들려줘요.”

모든 의식을 마치고 처음에 말을 걸었던 두 여성 중 한 명이 큰 도로변까지 안내해줬다. “가끔 전화하고 그럴 테니 들러서 얘기도 나누고 정성도 드리라”고 했다. “100일간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안전하게 도로변으로 나오자 다리가 풀리고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신촌을 지나다니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종종 마주치게 되지만, 웬만해선 감히 낯선 사람들을 따라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의 거처에서 나는 그들의 의식을 치르고, 그들이 주는 음식을 먹고 온 것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한 다소 무모하고 위험했던 2시간 반 동안의 동행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

그날 밤은 그들이 예상한 바와 달리 어떤 꿈도 꾸지 않고 푹 잠들었다. 그 다음날에 운동을 갔다가 돌아와서 보니 부재중 전화 몇 통과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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