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르포] 사회적 기업 ‘빅이슈 코리아’ 5년을 말하다

[르포] 사회적 기업 ‘빅이슈 코리아’ 5년을 말하다

기사승인 2015. 08. 31. 10:43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clip20150818174128
빅돔교육 중 대화를 나누는 참가자들
“안녕하십니까, 홈리스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입니다!”

‘BIG ISSUE’ 흰 글씨의 로고가 선명한 빨간 모자에 빨간 조끼, 손에는 잡지를 들고 우렁차게 구호를 외치는 빅이슈 판매원(일명 ‘빅판’)들. 이제 서울 시내 지하철역 근처에서 빅판들과 그들로부터 잡지를 사고 이야기를 나누는 20·30대 여성 구독자들의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빅이슈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도 많이 높아진 상태다. 창간 5주년을 맞은 빅이슈 코리아는 출범 당시 우려와 회의적인 시선을 딛고 모범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빅이슈는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 잡지로, 빈곤 문제를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작가, 예술가, 유명인들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지며, 일하려는 홈리스(노숙인 등의 주거취약계층)에게 잡지 판매권을 주어 자활의 계기를 제공한다. 사회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자존감을 회복하여 사회와 다시 소통할 수 있게 도와준다. 현재 호주, 일본, 대만 등 10개국에서 14종의 빅이슈 매거진이 발행되고 있다.

빅이슈 코리아는 2000년 7월 5일 노숙인 봉사단체 ‘거리의 천사들’ 주도로 창립됐으며, 2012년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독립했다. 한 달에 2번 격주간지를 발행하며, 8월 1일 113호가 나왔다.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 대전 등에 70여 판매지가 있다. 2030세대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 특히 지하철역 인근을 중심으로 판매지를 넓혀가고 있으며 곧 부산에서도 판매 예정이다. 독자층의 76%는 여성이며, 연령별로는 20대(63%)와 30대(32%)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20대 여성의 빅이슈 잡지 구매행위와 사회적 의미’에 대해 논문이 나올 정도로, 젊은 여성들의 구매가 두드러진다.

2010년 7월부터 2015년 4월까지 5년간의 통계를 보면, 빅이슈 판매원 총 등록자 누계는 634명이며 그 가운데 71명이 임대 주택 입주에 성공했다. 가장 최근 입주자는 남부터미널 5번 출구에서 일하고 있는 최대윤 빅판으로 7월 20일 입사 후 1년여 만에 마포구 망원동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결실을 맺었다. 빅이슈 판매 수익의 50%는 판매원에게 돌아가는데 그동안 빅판에게 제공된 수입은 18억6603만원에 이른다. 그 밖에 정기구독 및 온라인 판매 수익은 임대주택 입주 시 물품지원 비용으로 사용된다.

그동안 5180명이 잡지 제작(기고, 일러스트, 디자인, 사진 등), 빅이슈판매도우미(빅돔), 신간 홍보, 잡지 포장 및 정기구독 우편 발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능기부에 참여했다. 송일국, 장기하, 이승기, 아이유, 여진구, 손호준 등 유명 연예인들이 커버 스토리 표지모델로 재능기부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빅이슈판매도우미(일명 ‘빅돔’) 활동은 빅이슈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재능기부다. 빅돔은 빅이슈 판매원 옆에서 함께 빅이슈를 홍보하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자립을 응원하는 역할을 한다. 홈리스에게 경제적인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는 사회로부터의 단절, 소외감이다. 그렇기 때문에 빅돔의 존재는 위축된 빅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사회와의 소통창구가 된다. 빅돔 활동을 하려면 필수적으로 빅이슈로부터 빅돔 교육을 받아야 한다. 빅돔 교육은 매 주 토요일 10시(첫째 주는 11시)와 격 주 수요일 2시에 빅이슈 사무실에서 진행된다.

clip20150818174226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빅이슈 신경은 코디네이터와 경청하는 참가자들

◇ 빅돔 교육 현장을 찾아서

지난 8월 1일 토요일 11시 빅돔 교육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영등포 빅이슈 사무실을 찾았다. 빅이슈 신경은 코디네이터, 임정은 대외협력 대리가 교육을 진행했고, 신촌과 수원 등에서 대학생 2명, 중고등학생 3명, 사회복지사가 참가했다. 빅돔 활동을 했던 친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왔다는 학생도 있었고, 사회적 기업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다큐3일 빅이슈편을 보고 감명 받아 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노숙인 자활시설인 성남내일을여는집 사회복지사는 교육을 받고 시설의 홈리스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교육은 빅이슈의 설립 과정에 대한 소개에서부터 시작했다. 1991년 영국에서 스스로 홈리스였던 존버드 씨가 가난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탈피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끝에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더 바디샵 창시자의 남편 고든 로딕의 투자를 받아 빅이슈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영국과 일본 유학생들이 빅이슈를 접하고 온라인을 통해 창간준비모임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빅이슈 코리아를 탄생시킨, 세계적으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현재 영국에서는 주간지로 15만부씩이 판매되고 있고, 우리나라는 격주간지로 발행되는데 창간 당시 1000부 정도였던 발행부수가 2만5000부에 이른다.

다음으로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깔끔한 복장을 갖추고 있는 빅이슈 판매원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좀 덜한 편이지만, 대체로 거리의 노숙인은 지저분하고 무기력하며 때로는 위협적이고, 무엇보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회악으로 간주되곤 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나라에서 노숙인 문제가 대두된 것은 IMF로 실업자가 대량 발생하면서부터다. 지방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실직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거리에 노숙인이 대거 늘어나게 됐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 시설을 만들어 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가난한 나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지역 사회복지단체, 종교단체들에 노숙인 시설을 만들 것을 요구했고, 시설이나 컨테이너박스에서 노숙인들 수십 명이 집결 생활을 하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노숙인 복지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당장 잘 곳이 없어지면 쉼터나 노숙인시설, 무료급식소 등에서 어렵지 않게 의식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복지의 중점이 사회복귀가 아니라 오히려 노숙인 격리에 있고 시혜적으로만 이뤄지다 보니, 노숙인은 점점 자활의지를 잃고 사회와 단절되는 결과를 낳았다.

빅이슈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한번 노숙인이 되면 주민등록증에 표기할 주소가 없게 되어 일반적인 취직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빅이슈 판매원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스스로 번 돈으로 임대주택에 입주하여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홈리스와 노숙인’의 개념도 구분 지었다. 홈리스는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찜찔방, 고시원, 쪽방, 쉼터는 물론 월세방에 이르기까지 주거의 위기에 놓여있는 모든 사람들, 즉 주거취약 계층을 말한다. 홈리스의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빅이슈가 지원하고, 빅이슈 판매원의 자격조건으로 요구하는 대상도 노숙인만이 아니라 홈리스다. 홈리스 중 자립의 의지가 있으며, 판매수칙을 준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빅이슈 판매원이 될 수 있다.

빅이슈 판매 도우미 활동은 존재 자체만으로 빅판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소통과 정서적 자립을 돕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 강조됐다. 교육은 빅돔 활동시 빅판과 함께 외칠 구호를 큰 소리로 연습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홈리스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입니다”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희망의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빅이슈는 홈리스의 당당한 자활잡지입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빅이슈입니다”.

교육 후 성남내일을여는집 김경필 사회복지사와 잠깐 따로 이야기를 나눴다. 12명의 홈리스 분들이 생활하는 시설에서 일하고 계신 만큼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홈리스 분들이 빅이슈 판매원이 되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시혜적인 복지에 익숙해진 측면도 있고, 홈리스라는 것을 지하철역 같은 공공장소에서 공개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을 만날 것이 두려워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기도의 경우 서울시와는 달리 주거지원 혜택 연계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 빅이슈는 2012년 서울시와 노숙인 인식개선사업 공동추진을 위한 협약(M.O.U.)을 체결하고, 2014년 서울시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는 등 서울시와는 공조가 잘 이뤄지고 있다. 서울시 지하철역에서는 전혀 마찰 없이 빅이슈 판매가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타 지방에서는 판매처도 굉장히 한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주거지원 등의 연계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지방에서 판매처 확대 및 정부기관과의 공조는 앞으로 빅이슈가 더 성장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빅이슈가 홈리스 문제의 온전한 대안은 아니며 최종적인 결론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절망 상태의 홈리스들에게 주거와 일자리를 회복하여 사회에 복귀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빅이슈 코리아의 지난 5년간의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빅이슈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일하는 복지의 디딤돌’ 역할을 계속해 주길 기대한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