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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최치원에서 찾는 글로벌 외교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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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최치원에서 찾는 글로벌 외교의 DNA

김유진 기자 | 기사승인 2015. 11. 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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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임마누엘 경희대 교수 겸 본지 고문
최치원
일러스트=/변혜준

우리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중국의 경제와 사회 이슈는 한국의 경제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며, 종국엔 글로벌 이슈와 밀접하게 연계된다.

국가 간의 이러한 통합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시대 속에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야 할까? 나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문학을 공부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 미국 사람으로, 장차 미래를 짊어질 한국 젊은이들에게 맞는 롤모델은 누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러던 중 우연히 최치원에 대한 몇 가지 글을 도서관에서 읽게 됐고, 그의 놀라운 리더십에 감명을 받았다.

최치원은 12살의 나이에 중국 유학길에 올라, 중국에서 시험을 통과해 관리에 등용된 우수한 인재다. 지금 조기 유학 열풍에 휩싸여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처럼 적절한 롤모델은 없을 것이다.

사실 최지원은 한국을 넘어 문학, 예술, 정치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꿈꾸는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의 모델이 될 수있고, 돼야만 한다.

최치원의 외교관으로서의 모범적인 역할은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외국어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고, 외국에서 경영을 할 수 있으며, 리더가 될 수 있을 만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지식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나의 모국 미국에서는 국제 관계나 통치 분야에서는 윤리적 비전이나 인문학에 대한 중요성을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치원은 관리로서 인성 개발을 위해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젊은이들이 정치와 정부의 일에 관심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최치원이 살았던 통일신라의 시대는 중국과의 무역과 문화 교류가 활발하던 시대였다. 마치 오늘날 한국과 중국의 통합과 상당히 유사하다.

신라의 신분제도에 따라 성골, 진골 다음의 육두품 계급이었던 최치원은 뛰어난 젊은이였지만, 정부 일을 하기에는 기회가 제한적이었다. 그는 고민 끝에 새로운 기회를 찾아 외국으로 가겠다는 뜻을 굳힌다.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양주(揚州, Yangzhou)의 시장을 역임하고, 당시 당나라의 희종(僖宗)과 친밀한 관계가 된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최치원이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에서 시장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부패의 유혹에 끝까지 저항하는 대단한 청렴결백함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최치원의 정치는 현재 글로벌 협력의 본보기다. 그는 결정 프로세스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어 관여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고, 장기적으로 몸 받쳐 헌신할 수 있었다.

짧은 만남을 통한 문제 해결 방식에는 더이상 희망이 없다.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한국인, 중국인 그리고 수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장기적으로 함께 일해야한다.

최치원은 나에게 매우 강한 영감을 주고 있다. 그는 양주에 있을 때 국제 관계 혹은 국내 정치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지역 내부의 문화, 사회 그리고 정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좋은 통치를 위해 수필과 시 등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동참을 이끌기도 했다.

최치원의 행보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 어떤 종류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지 그려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다른 아시아 국가, 일본 그리고 미국 더 나아가 세계의 새로운 평화의 비전과 협력을 이끄는데 많은 영감을 제공한다.

지엽적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스스로 지역 사회로 뛰어들어 변화에 참여했고, 중국과 한국 사회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했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문학을 이용했다. 그는 문학이야말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이해한 특별한 지식인이었다.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교수는 예일대에서 중문학 학사 학위(1987), 동경대에서 비교문화학 석사 학위(1992),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일리노이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 조지 워싱턴대 역사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아시아 인스티튜드 소장으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세계석학들 한국미래를 말하다’ 등이 있다. 

정리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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