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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주의 그때그시절 IT] ⑥ CJ헬로비전 인수? ‘PCS’ 등장 후 격한 5社 경쟁, 결국 M&A로 ‘살아남기‘

[박영주의 그때그시절 IT] ⑥ CJ헬로비전 인수? ‘PCS’ 등장 후 격한 5社 경쟁, 결국 M&A로 ‘살아남기‘

기사승인 2015. 11. 0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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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S를 아시나요? 한솔PCS∙한통프리텔∙LG텔레콤, 이젠 잊혀진 그 이름들
KT·KTF 합병법인이 2009년 6월 1일 출범했다. 하루 전 서울 잠실에 위치한 KTF 본사에서 인부들이 건물 외벽의 ‘KTF’에서 ‘F’자를 떼어내는 모습. /사진= KT

국내 통신3사의 현재는 ‘경쟁의 산물’입니다. 유무선 시장의 이합집산을 거쳐 오늘날 ‘통신3사’에 귀결된 모양새죠. 현재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3사 이전 신세기통신, 한솔엠닷컴, 한통프리텔, KT아이컴(KT그룹이 IMT-2000 사업권 확보를 위해 설립했던 업체. 2003. 3 KTF에 합병), 파워콤, 하나로통신(현 SK브로드밴드), 스카이라이프 등이 명멸해갔습니다. 통신사업자간 경쟁 이슈는 주파수, 보조금, 단말기 등등 건별 매번 충돌이 불가피했습니다. 


1984년 3월 29일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 현판식 모습. /사진=SK텔레콤 


1984년 3월 29일 한국이동통신주식회사 현판식이 국내 ‘모바일’의 시발점이죠. 그 다음달 ‘차량전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동통신 시대가 본격 개막됩니다.(지난해 3월 국내 이통 서비스 30년 기획물이 쏟아졌죠) 1988년엔 최초 휴대형 이동전화가 등장했고, 1994년 선경그룹(현 SK그룹)의 한국이동통신 인수 및 제2 이통사업자인 신세기통신 설립(포스코∙코오롱)으로 복수경쟁 체제로 접어듭니다.(이때 KT 많이 억울했죠. 일설에 따르면 ‘뺏기다시피’ 선경에 한국이동통신을 내준 셈이니까요. 노태우 정부 말기였고, 최종현 선경 회장과 노태우 대통령이 사돈관계란 점에서 특혜시비에 휩싸였습니다. 앞서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딴 선경이 국민 저항에 부딪혀 이를 반납한 사례도 있죠. 이후 ‘유선통신사’인 KT는 1996년 PCS  사업권을 획득해 다시 무선 사업에 뛰어들지만, 그 뒤로 한국이통통신(현 SK텔레콤)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국내에도 이통사업자가 5개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PCS(Personal Communications Service) 사업자 출현에 따른 것이죠. 1996년 4월 1일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CDMA(Code Division Mutiple Access; 코드분할다중접속) 상용 서비스를 개시합니다. 퀄컴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노력의 산물인데, 정부의 지원도 컸죠. 800MHz 주파수를 이용한 디지털 방식 서비스의 개시입니다.(‘CDMA 최초 상용화’엔 이론이 있습니다. 앞서 싱가포르가 ‘세계 최초’ 상용서비스를 제공한 까닭이죠. 단지 ‘도시국가’라는 점(제한된 지역)때문에 ‘국가 단위로는’ 한국이 최초 상용’국가’로 평가됩니다. 퀄컴도 그렇게 수긍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96년 4월 1일 CDMA 개통식에서 이수성 당시 국무총리가 CDMA 이동전화 시험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이동통신 


1995년 7월 당시 정보통신부는 PCS 사업자 선정계획을 발표합니다.  이때 ‘2000년 매출규모 20조원’을 기대하는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란 인식이 파다했죠.(예측은 빗나가야 맛이라지만…) 삼성, 현대 등 단말을 만드는 재벌기업을 포함해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결국 단말 제조사로는 LG전자가 ‘간택’됩니다. 떨어진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은 후폭풍이 적지 않았구요.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인가요? 이후 휴대폰 제조사가 통신서비스를 함께 하는 게 결코 이롭지 않다는 게 드러납니다. LG전자 단말은 주로 LG텔레콤에만 공급된 거죠. 반면 삼성은 통신 5개사를 넘나들며 단말기를 공급하게 됩니다. 이 교훈 때문일까요? 최근 이슈가 된 제4이통 후보사업자들의 수 년에 걸친 구애에도 불구, 삼성전자는 끝내 ‘현금 참여’를 거절했죠. ‘현물투자’로 생색내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1996년 '예상 밖'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이 손잡고 PCS 사업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두 회사가 신설한 '에버넷'의 전체 지면광고. 


1996년 6월 LG텔레콤과 함께 한국통신프리텔(KT), 한솔PCS(한솔그룹)가 1.8GHz  대역 CDMA 방식의 PCS 사업권을 획득하게 됩니다.(이때 사업자 선정이 한 해 연기됩니다. 96년 3월 이석채 장관이 취임하면서 결실을 맺죠. ‘이석채’, 나중 회장으로 KT와 인연을 맺습니다)  그해 7월 10일 LG텔레콤이, 8월 한솔PCS, 12월 27일 한국통신프리텔이 차례로 설립됩니다. 식별번호는 각각 019, 018, 016이었죠.(SK텔레콤은 011, 신세기통신은 017) 이들 PCS 3사는 1997년 10월 1일 전국 상용 서비스에 돌입합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과욕이었죠. 5개 이통사의 본격경쟁이 태생부터 무리였다는 걸 아는 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PCS가 출현하면서 기존 011과 017은 ‘셀룰러’로, 016∙018∙019는 ‘PCS’로 구분해 부릅니다. 정확한 분류는 아니죠, 물론. 둘 다 CDMA 방식인데 주파수만 800MHz와 1.8GHz로 다른 것이니까요. 그리고 둘다 셀(Cell)과 셀 간 연동에 의한 ’셀룰러(Cellular)’방식이었구요. 그냥 편의상 그렇게 구분했습니다)



LG텔레콤 019 서비스 개시를 알리는 지면 광고.

2개도 경쟁이 심했는데, 사업자가 5개가 됐으니 어땠을까요? 가입자 유치 경쟁이 불을 뿜습니다. 보조금도 엄청 투입됐구요. PCS 초기 가장 왕성한 결과를 냈던 게 LG텔레콤입니다. 동네 꽃집까지 단말을 팔 수 있도록 유통망을 오픈하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서비스 초기 ‘그 뒤로는 해보지 못한’ 가입자 1위를 달성하기도 했죠. 시간이 지날수록 PCS 3사간 우열이 가려집니다. KT를 등에 업은 한통프리텔과 대기업 지원을 받는 LG텔레콤에 비해 한솔PCS(1999. 12. 15 한솔엠닷컴으로 사명 변경)는 열세에 몰립니다. 특히 한통프리텔은 98년 4월 100만 가입자를 확보해 ‘사업기간 대비 최단기간 가입자 유치’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합니다.(이때 한솔PCS 슬로건 ‘원샷018’ 태동 뒷얘기는 전에 말한 바 있죠? 오OO 실장님, 밥 사세요.^^)
 
너무 많은 통신사 ‘정리’ 얘기가 솔솔 나오면서 2000년 5월 한통프리텔이 한솔엠닷컴 인수를 공식 발표하고 이듬해 5월 합병합니다. 이때 한통프리텔은 KT프리텔(대표 브랜드 KTF)로 이름을 바꿉니다. 이는 2009년 KT에 합병될 때까지 계속됩니다.(한솔엠닷컴은 비운의 통신사였습니다. 채 경쟁을 해보기도 전, 인수설에 휩쓸렸죠. 1998년 12월 당시 정용문 한솔PCS 사장은 “나도 모르는 합병설이 곤혹스럽다”며 언론을 힐난하기도 했죠. 한솔PCS 합병설의 진실)


한방에 통한다, 원샷018. 슬로건은 PCS 3사 중 최고였다. /사진=018 광고 캡처
 (이 와중에 2000년 12월  SK텔레콤과 KTF가 비동기 IMT-2000(WCDMA) 사업권을 획득합니다. 2001년에는 동기식(CDMA) 사업자로 LG텔레콤이 선정됐죠. 동기식의 경우 당초 하나로텔레콤이 신청했지만 점수 미달로 탈락하고, 비동기식에서 탈락한 LG텔레콤이 동기식을 신청, 세계 최초의 동기식 IMT-2000 사업자로 선정됩니다. 그러나 2006년 7월 LG텔레콤은 이를 정통부에 ‘반납’하고 정통부는 사업권 취소 결정을 내립니다. 역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꿈의 이동통신’이라 불리던 IMT-2000 서비스 중 동기식의 몰락인데요. 당시  ‘CDMA 종주국’ 위상에 취해 CDMA 기반의 ‘동기식’을 밀어붙였던 정통부의 패착이란 분석이 많습니다. 이런 내용을 포함해 IMT-2000 등 이통서비스∙방식의 ‘진화’는 나중 기회 있을 때 함 다뤄보죠)
 
2002년 1월 5일에는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합병합니다. ‘시장점유율을 50% 미만으로 낮추는 조건’이었는데, 이게 말이 안되는 거라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죠. KTF는 2009년 KT에 합병되죠. 이후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3사 체제’로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97년 5개 이통사 도입 이래 13년만이죠. 내년 초 예정대로 제4이통이 출현할 경우, 사업자는 다시 4개로 늘어납니다. 지난한 통신사 흥망성쇠를 아는 사람들이 ‘3개도 많다’고 하는 이유, 다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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