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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누비는 열정리더,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현장을 누비는 열정리더,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기사승인 2015. 11. 2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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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섭 오산 컨벤션웨딩홀·뷔페 대표
과감한 결단력으로 새 수익 창출…명강사·호텔 경영의 꿈 키워
정미섭 대표 메인1
정미섭 오션 컨벤션웨딩홀 대표/사진=한수진
오산컨벤션웨딩홀은 1년에 300쌍의 결혼과 500건의 돌잔치가 치러지는 오산의 대표 웨딩홀이다. 지역의 웨딩홀 중 유일하게 단독건물 형태가 아니지만, 1등을 놓치지 않고 11년째 순항중이다. 이는 탁월한 리더십과 진취적인 성향으로 ‘웨딩사업’이란 가시밭길을 비단길로 만든 정미섭 대표(44)가 맺은 결실이다.

“역경은 사람을 고난에 빠지게도 하지만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것 같아요. 세월호나 메르스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 웨딩홀이 받는 재정적 타격은 막대합니다. 거기다 사회적으로 결혼 시기는 늦춰지고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기 때문에 계속되는 위기상태라고 할 수 있죠. 또 화려한 인테리어와 시설을 앞세운 새로운 웨딩홀들과 치열한 경쟁도 펼쳐야 해요.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담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리한 환경조건이 아니라면 서비스나 음식 맛·친절함으로 경쟁을 뛰어넘으면 되고,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전환시키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새벽을 깨우는 열정 ‘24시간이 모자라’
정 대표는 새벽 5시30분이면 기상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관광버스에 오른다. 웨딩홀과 뷔페를 알리기 위한 현장 투어를 하는 것이다. 정 대표에겐 고객들을 만나러 현장을 다니는 것이 하루를 여는 습관이고 가장 중요한 일과다.

“오산의 일정 지역은 전국 각지로 떠나기 위한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있어요.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이드처럼 마이크를 잡아서 웨딩홀 홍보도 하고 전단지도 나눠드립니다. 여행의 시작이 조금 더 즐거울 수 있도록 음료나 주류를 협찬해 드리기도 하죠. 리더가 현장에서 답을 찾는 노력을 쉬지 않고 할 때 소비자들은 응답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나서야 웨딩홀에 출근해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부서장들과 미팅 및 웨딩홀 상태를 점검하고 직원교육을 진두지휘한다. 특히 영업을 위해 각종 부녀회 행사, 산악회, 야유회, 워크숍, 아파트 통장 모임 등 시민들이 모인 곳에는 빠지지 않고 얼굴인사를 다닌다. 지역경제·정치·학계 행사도 일일이 챙긴다. 신규 고객 유치와 기존 고객관리가 웨딩홀의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잣대임을 알아서다. 그래서 정 대표는 그 일의 최전방에서 뛴다. 25개에 달하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인맥을 쌓고 관리하는 데 열정을 쏟는 것이다.
정미섭 대표 서브 인터뷰 컷
◇악착같은 도전과 발품으로 성공을 일구다
정 대표의 웨딩업계 입성은 우연한 인연에서 비롯됐다. 의류회사 영업직에 입사해 탄탄대로를 달리다 회사 부도로 길을 잃게 되자 평생직장이 될 수 있는 전문직으로의 전환을 생각했고 그것이 친척의 제의로 시작된 일산의 웨딩숍이었다.

“웨딩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철저한 공부가 필요했어요. 변변히 화장 한 번 해볼 수 없었던 환경이었기 때문에 메이크업은커녕 패션감각도 제로였죠. 그래서 메이크업 전문학원에서 개인교습을 받고 마네킹에 수백 번, 수천 번 연습을 반복해 실력을 키워나갔죠. 하나 둘 고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고 전문메이크업을 받은 신부가 1500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을 이뤘어요. 성공적인 데뷔를 한 거죠.”

하지만 얄팍한 계산으로 일관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며 창업을 결심, 순수 자본 1700만원, 대출 2000만원을 받아 ‘주노웨딩숍’을 열었다. 건물 임차료 외에 투자비용이 없었던 정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발품’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벽보에 광고지를 붙이고 현수막도 직접 걸었다. 또한 교회나 큰 공장을 찾아가 홍보 팸플릿을 돌리고 낮에는 신부 메이크업과 고객 상담을 도맡아했다. 무엇보다 야외 촬영할 때 색다른 디자인 드레스를 추가로 한 벌 더 제공하는 차별화 전략이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며 서서히 이름을 알리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든 것은 물론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언니·누나 같은 친밀감으로 매출의 급성장을 이뤘다. 각종 방송에도 출연해 인천지역 웨딩업계 성공 개척자로 이름을 날렸다.

“인생의 전환점인 결혼과 함께 2005년 지금의 오산컨벤션웨딩홀 운영을 시작했죠. 집 밥 같은 정결한 음식과 철저한 교육으로 선보이는 프리미엄 고객서비스를 앞세워 시장을 개척해 나갔죠. 충성고객층이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만큼 결혼식이 있을 때는 웨딩홀에서 하객을 직접 맞으며 서비스를 지휘하죠. 또 고객 리스트를 보고 성향을 미리 파악해 음식과 주류를 꼼꼼히 체크해 제공해 드리면 감동하시더라고요.”

오랜 웨딩숍 운영 경험과 고객 서비스 노하우에 힘입어 안정적인 정착을 할 무렵 정 대표는 10억원을 사기당하고 세무조사를 받는 시련에 봉착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급성신장암 진단을 받아 암 제거수술을 받는 아픔이 이어졌다. 낙심해 주저앉을 법하지만 오히려 과감한 투자 전략을 펼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르스로 매출이 급감하고 재정난에 봉착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과감히 리뉴얼을 단행했다. 거기다 웨딩홀을 경영하는 것 자체가 수많은 프로세서를 요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데, 출장뷔페와 최근엔 도시락 사업까지 진출하며 과감한 투자와 진취적인 경영스타일을 보이고 있다.

“웨딩홀이 어려운 시기에 출장뷔페가 새로운 소득원으로 지원해줌으로써 기업의 안정화를 일굴 수 있었던 거예요. 이제는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특별한 도시락을 만들어 조금 더 소비자들과 가깝게 만나볼 생각입니다. 특화된 용기개발과 특색 있는 메뉴 구성, 각종 큰 업체의 입찰에 참여하며 초석을 다지고 있어요.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이밖에도 정 대표의 직함은 여러 개다. 그리고 아직도 이루고자 하는 꿈도 많다. 현재 자영업자들을 위한 강의를 활발하게 펼치는 것은 물론 학업에도 매진하고 있다. 장기적로는 웨딩홀의 끝판왕인 호텔 경영을 목표로 삼았다.

“오산 컨벤션웨딩홀에서 한번 예식이 치러질 때마다 인턴과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60명, 주말엔 100명 정도가 움직여요. 제가 성장을 멈추지 않아야 우리 직원들이 함께 밝은 꿈을 꾸게 될 것이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 현장을 뛰어다닐 생각입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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