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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정든 법원 떠나는 ‘법심리학 전문가’ 김상준 부장판사

27년 정든 법원 떠나는 ‘법심리학 전문가’ 김상준 부장판사

기사승인 2016. 02. 0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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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 서울고법 부장판사/사진=연합뉴스
“1989년 백면서생의 나이에 이 서초동 청사의 첫 입주민이 됐습니다. 이제 세월이 훌쩍 흘러 27년이 지난 지금 이 건물을 떠나고자 합니다. 그 사이 많은 사랑과 배움을 얻었고 또 일부는 돌려줬습니다.”

법심리학 분야 전문가인 김상준 서울고법 부장판사(56·경북·15기)는 5일 서울 서초동 법원을 떠나면서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과 정신심리치료를 동시에 진행해 피고인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이른바 ‘치료적 사법’(Therapeutic justice) 판결을 많이 해왔다. 2007~2008년 대전고법 재직 당시 치료적 사법에 관심을 갖고 피고인의 정신감정을 의뢰해 치료를 전제로 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정신병으로 인한 범죄에 대해 단순 수감이나 격리, 석방은 재범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는 지론에 따른 것이다.

형사5부 재판장인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성탄절 전날엔 재활이 필요한 피고인들에게 치료를 조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법정에서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제가 여러분께 다른 것은 못 해드려도 ‘새 출발’이라는 희망을 드리겠다”며 피고인들에게 판결문 사본과 치료내역을 건네 ‘죄를 품은 성탄절 판결’이라는 미담 기사로도 보도된 바 있다.

“단순한 법적용이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원인과 처벌의 효과 등에 대한 법관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온 김 부장판사는 범죄 심리를 파악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최근엔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피고인 박춘풍의 뇌 영상을 양형 자료로 검토한 재판을 맡아 화제가 됐다. 국내에서 법원이 전문의 문답형 정신감정이 아닌 뇌 영상 자료를 직접 재판에 활용한 첫 사례였다. 피의자의 범행 당시 심리상태와 원인 등을 분석해 범죄의 고의성 여부를 따져 양형에 반영한다는 사법적 시도였던 셈이다.

김 부장판사는 퇴임 이틀 전인 지난 3일 법원 음악사랑 동호회의 게스트로 나와 양희은의 ‘숲’을 선곡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뇌 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글을 인용해 퇴임사를 했다.

“무엇보다 행복한 것은 이 아름다운 정원에서 마음껏 재판하고 깨어 고민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여러분들과 함께 했다는 기억입니다. 그것은 특권이자 삶의 향연이었습니다.”

곧이어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푸르고 푸르던 숲/내 어린 날이 잠든 숲’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젊음의 시절 치열한 법과 정의를 위한 각축장에 서 있었던 그가 떠나온 숲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사뭇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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