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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김일성 1980년대 본심은…“소련 못믿고 중국은 안믿어”

北김일성 1980년대 본심은…“소련 못믿고 중국은 안믿어”

기사승인 2016. 04. 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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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문서 공개…"남침 의사 없고, 미국과 싸울 생각도 없다"
밀수입 미국 헬기 '외화벌이' 위해 이란에 재판매 시도도
북 '태양절' 기념 우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국가우표발행국이 김일성 주석의 104회 생일인 태양절(4월15일)을 기념해 우표 4종을 발행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북한 김일성 주석은 1980년대 초반 “소련(러시아)은 믿을 수 없고(cannot rely on), 중공(중국)은 믿지 않는다(doesn‘t rely on)”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17일 공개한 198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당시 캄보디아 국왕인 노로돔 시아누크는 리처드 홀브룩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만나 김일성 주석의 이 같은 언급을 전달했다.

이는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의 몬조(Monjo) 공사가 1980년 3월4일 박쌍용 외무부 정무차관보와의 면담에서 “최근 홀브룩 차관보와 시아누크간 면담 내용”이라고 전하면서 알려졌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제국과의 단결 강화 및 친선협조 관계의 발전을 표방하면서 중·소와의 유대를 공고히 하던 때였던 만큼 이 발언은 북한이 그 당시에도 ‘겉과 속’이 달랐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1980년대 초반 중국으로부터는 이념적 결속을, 소련으로부터는 경제·군사적 실리 획득을 추구하는 등 양면외교를 유지해 왔다.

또 김일성은 시아누크에게 남침할 의사가 없으며, 미국과 싸울 생각도 없다고도 했다. 시아누크는 김일성의 건강에 대해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며, 목 뒤의 혹은 눈에 띌 정도로 크다”고 언급했다.

시아누크는 북한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등 김일성 주석과는 호형호제하던 사이다. 김일성은 시아누크에게 평양 외곽에 ‘왕궁’에 버금가는 고급 주택을 선물했고, 시아누크는 김일성을 “형제나 친구 이상”이라고 불렀다.

아울러 1980년대 초반 북한이 이란·방글라데시 등과 무기수입·공동훈련 등 군사협력을 비밀리에 진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 정무차관보는 1980년 10월6일 몬조 공사와의 면담에서 “이란의 보잉 747 수송기가 매일 평양을 왕래하고 있고, 그 운항시간과 비행편 번호까지 파악하고 있다”면서 “미측이 적재물 내용을 좀 더 자세히 파악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몬조 공사는 “위성으로도 적재물을 식별하기가 어려우며 의문의 여지가 남아있다”며 “관련 정보가 입수되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박 정무차관보는 같은 해 7월 몬조 공사와의 면담에서는 “세이셸(Seychelles)에서 제복을 입은 북한군이 목격됐고, 방글라데시 군인 100여 명이 북한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며 미측에 확인을 요청하고 “만일 이 첩보가 확인된다면 북한의 혁명수출과 다름없기 때문에 매우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려했다.

또 북한이 1980년대에 독일의 무역회사를 통해 밀수입한 미국산 500MD 헬리콥터를 이란에 재판매하려고 시도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외교문서에 따르면 북한은 1985년 10월 사절단을 이란에 파견해 500MD 헬기 판매협상을 벌였으나 가격절충에 실패해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북한이 독일에서 몰래 도입한 500MD 헬기 전량을 이란에 재판매하려 시도한 것은 심각한 외화사정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분석했다.

해외 판매에 실패한 북한은 500MD 헬기를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2013년 7월 27일 평양시내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열병식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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