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공격하는 ‘묻지마 범죄’ 기승…공통점 발견됐다

강남역 이어 서울 지하철·부산·청주서도 잇따라 발생
피해자 여성·청소년·미화원 등 사회적 약자…피해망상·분노·술이 원인

전국에서 '묻지마 범죄'가 속출한다. 딱히 이유도 없이 얼굴조차 모르는 이들을 무차별 공격한다.

피해자는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여성이 대부분이다. 환경미화원,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들도 묻지마 범죄의 표적이 된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모(34) 씨는 이날 오전 1시 5분께 강남역 부근 주점 건물 화장실에서 A(23·여)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김 씨는 전날 오후 11시 42분께 해당 건물에 들어간 뒤 범행 직후인 1시 7분 건물을 빠져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자신이 종업원으로 일하는 인근 식당에서 흉기를 훔쳐 범행 장소로 이동했다. 1시간 30분가량 숨어 있다가 건물 1∼2층 사이 공용화장실에 들어간 A씨를 뒤따라 들어가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원인 A씨는 해당 건물 주점에서 남자친구 등과 함께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 들렀다 변을 당했다.

김 씨는 "여자들이 항상 나를 무시해 범행했다"고 주장하고, 현장 검증에서도 범행 장면을 태연하게 재연해 큰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25일 부산에서는 50대 남성이 도심 대로변에서 여성 2명을 마구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오후 5시 15분께 부산 동래구 명륜동 인도에서 김모(52) 씨가 1ｍ 길이의 가로수 버팀목을 뽑아 각자 길을 가던 70대와 20대 여성을 잇따라 무차별 폭행했다.

피해자들은 머리와 얼굴, 어깨 등을 다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같은 날 서울에서는 혼잡한 퇴근길 지하철에서 40대 남성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술에 취한 상태로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를 탄 이모(49) 씨는 '침을 뱉지 말라'는 환경미화원의 말에 격분해 지니고 있던 20㎝ 길이 흉기를 마구 휘둘러댔다.

이 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역 관계자와 사회복무요원에게 제압당했다. 범행 당시 열차는 퇴근길 시민으로 가득차 있어 자칫 큰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이날 청주에서는 60대 남성이 버스에서 떠든다는 이유로 고등학생을 흉기로 위협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신모(60) 씨는 증평에서 청주로 가는 좌석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떠들면 가만 안 두겠다"며 흉기를 꺼내 들고 A(18)군 등 고교생 3명을 위협했다.

술 취한 상태였던 신 씨는 "어린 학생들이 뒷자리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떠들어 화가 났다"고 말했다.

'묻지마 범죄'는 사건마다 범행 동기가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막연한 피해 의식과 이에 따른 왜곡된 분노에서 비롯된 범죄가 많다.

강남역 인근 화장실 살인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은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결론지었다.

프로파일러 심리 면담 결과를 분석한 결과, 피의자 김씨는 전형적 '피해망상 조현병(정신분열증)'이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김 씨는 2003∼2007년 누군가 자신을 욕하는 게 자주 들린다고 주변에 호소했다. 이후 여성들이 자신을 견제하고 괴롭힌다는 피해망상으로 발전했다.

김 씨는 일하는 식당에서 서빙을 보다 위생 상태가 불결하다는 지적을 받고 최근 주방 보조로 옮겼다. 이 일이 여성의 음해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게 범행의 결정적 동기가 됐다고 경찰은 분석했다.

부산 각목 폭행 사건 피의자 김 씨는 정신장애를 앓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2000년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김 씨는 2012년 병원 진단서를 동 주민센터에 제출하지 않아 장애 판정을 갱신하지 못해 이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구청에서 지원받던 생계급여마저 끊겨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됐고, 이에 따른 분노는 생필품을 훔치거나 남의 차량을 부수는 행동으로 표출됐다.

알코올 또한 피해망상과 분노 못지않게 묻지마 범죄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서울 지하철 흉기 난동과 청주 좌석버스 흉기 위협 사건 피의자 모두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하철 난동 피의자는 범행 당시 소주를 무려 7병이나 마신 뒤였고, 청주 버스 흉기 위협 가해자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어린 학생들을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질병 등으로 인한 왜곡된 피해 의식과 분노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적 성향으로 이어지기 쉽고, 알코올은 증상을 더욱 악화시킨다"며 "치료에 대한 본인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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