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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춘할망’ 윤여정 “배우라면 누구나 똑같은 역할 싫어하죠”

[인터뷰] ‘계춘할망’ 윤여정 “배우라면 누구나 똑같은 역할 싫어하죠”

기사승인 2016. 05. 3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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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사진=콘텐츠 난다긴다
윤여정을 떠올리면 세련되고 도회적이고 우아하다. 70대에도 날씬한 스키니를 소화하며 가식 없는 솔직함까지 겸비한 원조 걸크러쉬(동경하는 여성을 뜻하는 신조어)다. 성인 여성들의 워너비로 꼽히는 그가 해녀복을 입은 구수한 제주도 할머니가 가능할까 싶었지만 너무도 따뜻하게 변신해줬다.

"배우는 맨날 하는 것만 하면 지루해요. 작품을 할 적마다 늘 다른 걸 하려고 애를 쓰죠. '계춘할망'도 아마 그런데서 예스를 했을 거예요. 나한테 전화를 걸었던 제작자도 저더러 도회적인 이미지 소진됐다고 하고, 그래서 해본거지. 특별한 의미는 없어. 배우라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똑같은 역할을 하는 건 싫어해요."

그가 시나리오를 받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자신의 증조할머니였다. 6.25 피난길 그가 서너 살 때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증조할머니만 살아계셨다. 할머니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달리 조건 없는 내리 사랑인데 너무 늦게 깨달았다며 자신을 끔찍이 아끼셨던 증조할머니께 속죄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어려서는 몰랐죠. 할머니도 아니고 증조할머니시니까 내리사랑이라는 게 얼마나 컸겠어요. 자기 손주가 나은 딸이니 똥 싸는 것도 예뻤겠죠. 벌써 5~60년 전 얘기인데, 감도 씹어서 제 입에 넣어주고 저는 그게 비위생적이라 너무 싫었어요. 50이 넘어서야 할머니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됐어요. 남편은 북에 남았고, 우리 아버지는 죽었지, 그녀의 산 역사도 안됐고, 그래서 이번 촬영이 힘들거나 괴로워도 할머니께 바치는 영화라고 생각하자면서 버텼죠."

윤여정은 '계춘할망'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할머니로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장면에서 혜지(김고은)가 나를 서먹서먹해 하고 그럴 때 가끔 연상작용 같은 게 있었어요. 혜지는 할머니를 밀쳐내는 나 같았죠. 연기하는 동안에는 생각나지 않았지만 불쑥불쑥 할머니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는 여러모로 그에게 쉬운 현장은 아니었다. 개인적 아픔을 겪기도 했을 뿐더러 여러 차례 수난도 겪어야 했다.

"힘들었어요. 상처도 많이 입었고요. 해녀복을 벗다가 귓바퀴가 찢어지고 뱀장어 신에서는 뱀장어가 주머니 들어가는 순간 제 사타구니를 물어버려서 길에서 악 소리를 질렀죠. 지금까지 뱀장어에 물린 피부색이 까매요. 나중에 찍을 때는 뱀장어 입에 테이프를 붙였어요. 뱀장어도 그렇게 찍어본 건 처음일 거예요."

그렇게 힘든 촬영장에서 그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서울에서 내려온 지원군들이었다. 

"서울에서 나의 응원단들이 많이 왔었죠. 이재용 감독, 나영석PD, 임우정 작가, 배두나 등이 음식을 공수해오기도 하고 내려와서 힘이 많이 돼 줬어요. 제일 의지가 됐던 후배는 뱀장어 사건 때 나 대신 주사를 맞을 뻔한 후배예요. 이들 아니었으면 제주도에서 못 견뎠어요."

연기 인생 50년, 7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시들지 않는 매력을 자랑하는 대체불가 여배우 윤여정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지금이 딱 평화롭고 좋아요. 여배우의 삶이 힘들다고 하는데 40대 때 주인공에서 밀리고 고모, 이모로 가면서 끔찍하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 시기 배우가 아닌 내 인생 자체가 끔찍했기 때문에 연기는 곧 일이였어요. 살기 위해서 일을 했기 때문에 모든 들어오는 일에 감사했었죠. 60대를 넘기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감독과 작가와 일하면서 여유롭게 일하고 있으니 사치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명예를 위해서 그런 것 다 상관없이 좋아하는 작가와 감독이 하자고 하면 어떤 역할이라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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