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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세 번째 의자

[칼럼] 세 번째 의자

기사승인 2016. 06. 1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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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내 오두막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다른 하나는 우정을 위해,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 놓아둔 것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월든>의 ‘방문객’ 편에 있는 글귀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숲의 월든 호숫가에 조그만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던 소로우는 인적 없는 숲속에서도 혼자만의 고독에 빠져들지 않았다.

이 고고한 자연주의자는 자신의 엄숙한 명상을 위한 의자뿐 아니라 친한 벗들을 위한 의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낯선 이를 위한 의자도 함께 준비해 두고 있었다. 소로우의 세 번째 의자는 세상을 향해 열린 사회성을 상징한다. 그는 숲속의 적막 속에서도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 소통은 소로우의 고독한 명상이 원시림의 샘물처럼 맑고 투명했기에 더욱 순수했다.

피리는 바람을 만나야 소리를 낸다. 피리와 바람의 소통이 감동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바람과 마주쳐 소리를 내기 위해 피리는 속을 비워야 한다. 종이 당목(撞木)을 맞아 소리를 내려면 속이 비어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좁은 오두막에 낯선 이를 위한 의자 하나의 공간을 비워둔 소로우의 뜻도 소통의 울림에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있어야 자신도 존재하는 구조를 대대관계(待對關係)라고 한다. ‘낮과 밤’ ‘남과 여’처럼 자연과 인간의 모든 삶의 구조가 대대관계로 짜여있다. 어느 한쪽만 존재할 수 없다. 서로 갈등하며 어울리는 상호 소통관계가 대자연의 섭리다.

“가로 보면 고개요 모로 보면 봉우리라/ 멀고 가까우며 높고 낮아 모두 다르니/ 여산의 참 모습을 모르는 것은/ 이 몸이 산속에 갇혀 있는 탓일세(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客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自在此山中)” 소동파의 여산(廬山)이라는 선시(禪詩)다. 산속에 갇힌 시선으로는 산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다. 산 밖으로 나와야 한다. 산에서 나오기 어렵다면 산 밖의 사람들을 불러들여 그 눈길을 빌려야 한다. 그것이 참된 앎을 위한 소통의 지혜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通卽不痛 不通卽痛). 동의보감 잡병편(雜病篇)에 나오는 글이다. 소통이 막히면 병이 들게 마련이다. 개인의 건강만이 아니다. 소통은 사회와 나라에도 적용되는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원리다. 진(秦)나라가 허무하게 멸망한 원인을 사기(史記)는 이렇게 분석했다. 옹폐지국상야(雍蔽之國傷也). 언로가 막혀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뜻이다.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현대사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왕(王)은 석 삼(三)자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은 글자다. 삼은 하늘과 사람과 땅을 가리킨다. 이 셋을 하나로 이어주는 자리가 왕이라는 뜻일 게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정치의 출발이다. 군주시대에도 왕이 평복 차림으로 몰래 민정시찰에 나서곤 했다. 먼 지역에는 암행어사를 보내 지방 관리들이 민생을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폈다. 조선왕조가 설치한 사간원(司諫院)의 주된 임무는 왕의 언행에 대한 비판이었다. 군신(君臣)관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한 조선의 정치철학이 반영된 국립 언론기관이었다.

“대면보고 필요하세요?” 언젠가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장관들에게 던진 물음이다. 답은 침묵이었다. 장관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대면보고가 필요한 것은 장관들이 아니라 대통령 자신 아닌가.’ 소로우의 세 번째 의자가 세상을 향해 열린 사회성을 의미했듯이 국정책임자에게도 국민을 향해 활짝 열린 세 번째 의자가 필요하다. 옛적의 왕들도 민심을 알기 위해 몸소 암행감찰에 나섰는데, 부르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올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세 개의 의자는 늘 가까이 있는 세 사람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고독한 결단을 위한 의자도 있어야 하고 측근들의 내밀한 보고를 듣기 위한 의자도 필요하지만, 누구와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 번째 의자가 반드시 곁에 놓여있어야 한다. 위에서 소통의 물꼬를 트지 않으면 상생의 물길이 아래로 흐를 수 없다. 대통령에게 이렇게 묻는 장관을 볼 수 없는 현실이 유감스럽다. “대면보고 필요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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