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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6·25 전쟁 ‘민간인 99만명 인명 피해, 국군 13만명 사망’

숫자로 본 6·25 전쟁 ‘민간인 99만명 인명 피해, 국군 13만명 사망’

기사승인 2016. 06. 2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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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66주년 기획 특집] 학살 당한 사람 12만명, 22만명 부상, 납치 8만명, 30만명 행방불명...유엔군 3만명 전사·사망, 국군 개전 당시 10만명, 북한군 18만명...중공군 122만명 참전, 11만명 사망
국민의례하는 참석자들
6·25전쟁 66주년 행사 참석자들이 25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 세번째부터 세이모어 번스타인 유엔참전 피아니스트,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황교안 국무총리, 박희모 6·25참전유공자회장,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상돈 국민의당 최고위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 일어난 지 66년의 세월이 흘렀다. 국내적으로 동족 상잔의 6·25 전쟁이라고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으로 통용된다. 한반도에서 일어났지만 미·소 냉전과 중국의 개입, 국제연합 유엔(UN) 군의 참전, 다시 남북 분단까지 단순히 남북전쟁으로만 들여다 보기에는 전쟁이 미친 영향이 지금도 국제 정세에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6·25 전쟁으로만 부르기에는 너무 좁아 보인다.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전쟁이다. 66년 전에 남북 전쟁이자 자유·공산 진영의 대리전이었던 피비린 내 나는 한국전쟁은 한국인과 국제사회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지금까지 주고 있다. 한국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 전쟁의 역사로부터 뼈아픈 교훈을 찾기 위해 숫자를 통해 한국전쟁의 참상을 되짚어 봤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통계로 본 6·25 전쟁’, 2010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전시한 ‘기록으로 보는 6·25’, 국방일보 보도 등을 참조했다.

◇한국전쟁 3년, 국군 13만명·민간인 24만명 숨졌다

1949년 대한민국 인구는 2018만8641명이었다. 3년 전쟁 동안 남한지역 민간인 인명 피해는 99만 968명에 달했다. 일반인 사망자가 24만4663명이었다. 학살 당한 사람은 12만8936명이다. 22만9625명이 부상 당했다. 무려 8만4532명이 납치됐다. 30만3212명은 지금도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자가 됐다. 국군은 전쟁으로 13만7899명이 전사하거나 사망했다. 육군이 13만5858명, 해군이 해병대 1210명을 포함해 1903명, 공군은 138명이다.

◇전 세계 16개국 전투병 파병, 유엔군 3만명 전사·사망

유엔군으로 전투부대를 파병한 국가는 16개국이다. 참전 연인원은 195만4485명이었다. 이 중 참전 병력은 미국이 178만9000명으로 최다였다. 유럽의 소국 룩셈부르크도 100명이 대한민국을 위해 싸웠다. 전사와 부상, 실종, 포로 등 유엔군 전체 인명 피해는 15만1129명이었다. 이 중 전사·사망자는 3만7902명이다. 미군이 3만3686명이나 숨졌다.

◇6·25 발발 당시 국군 병력 10만명, 8개사단 22개 연대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당시 국군은 10만3827명이었다. 육군은 9만4974명이었다. 부대 편제는 8개 사단 22개 연대 체계였다. 전쟁 발발 직전 대대 훈련까지 마친 연대는 5개 연대에 불과했다. 연대의 전투력 수준은 평균 49.9%에 지나지 않았다. 해군 병력은 해병대 1241명을 포함해 6956명, 공군은 1897명이었다. 해군은 함정 구매 모금을 통해 구잠함(PC) 4척을 구입했다. 하지만 PC-701(백두산)을 빼곤 나머지 3척은 한국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맞았다. 함정은 JMS 소해정 등 36척에 불과했다. 공군은 훈련기 10대와 연락기 12대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6·25 행사 참석한 어제의 용사들
국내외 참전용사들이 25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66주년 행사에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개전 당시 북한군 전력, 국군의 2배 가까운 18만명, 전차 242대

개전 당시 북한군은 18만8297명이었다. 육군이 17만5200명, 해군 1만297명, 공군 2800명이었다. 장비·무기는 한국군과 비교 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육군은 야포 565문, 대전차포 552문, 고사포 72문, T-34 전차 242대, 장갑차 59대, SU-76 자주포 186문, 모터사이클 50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해군은 250~800톤급 함정 7척, 소형경비정 3척, 2000톤급 수송선 1척, 어뢰정 5척, 소형어선 96척 등 115척이었다. 공군은 전투기 84대, 저공습격기 113대, 기타 항공기 등 226대를 이끌고 38선을 침범했다.

◇중공군 122만명 한국전쟁 최대 병력 참전, 11만명 사망

‘인해전술’로 불리는 중공군은 1950년 10월 19일 압록강을 처음 건넜다. 10월 말까지 약 20만 명이 참전했다. 1950년 10월 25일 첫 전투에 참가한 이후 전쟁 기간 중공군은 최대 58개 사단 122만여 명이 참전했다. 전차와 자주포 390대, 각종 포 1만2000문도 동원됐다. 중공군의 인명 피해도 컸다. 11만6000여 명이 사망했다. 22만여 명은 부상 당했다. 행방불명과 포로도 2만9000여 명에 달했다.

◇16개국 전투병 파병, 국제사회 63개국 전투·의료·물자 지원

66년 전 당시 세계의 70%에 달하는 63개국에서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투병 파병과 의료·물자 지원을 했다. 16개국은 전투 병력을 파병했다. 5개국은 의료지원, 39개국은 물자를 보내 전쟁 기간과 전후 대한민국 복구에 적지 않은 힘이 됐다. 3개국은 물자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전투 파병 16개국은 미국, 프랑스, 캐나다, 콜롬비아, 그리스,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뉴질랜드, 호주, 룩셈부르크, 벨기에, 터키, 태국, 필리핀이다. 의료 파견 지원 5개국은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다.

물자를 지원한 39개국은 과테말라, 도미니카, 독일, 라이베리아, 리히텐슈타인, 레바논, 모나코, 멕시코, 미얀마, 베네수엘라,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스위스, 아르헨티나,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인도네시아, 일본, 아이티, 에콰도르, 오스트리아, 우루과이,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자메이카, 대만, 칠레, 쿠바, 캄보디아, 코스타리카, 파나마, 파라과이, 파키스탄, 페루, 헝가리, 바티칸 교황청이다. 물자지원 의향을 밝힌 3개국은 니카라과, 볼리비아, 브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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