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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제헌절의 개헌론

[칼럼] 제헌절의 개헌론

기사승인 2016. 07.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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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1789년 10월 5일 프랑스 절대왕정의 억압통치에 반기를 든 파리 시민들은 국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화로운 거처인 베르사유 궁전으로 쳐들어갔다. 1961년 4월 19일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시민, 학생들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들었다. 권력의 심장부인 왕궁이나 대통령 관저를 향한 저항의 행진이었다.

영국의 경우는 다르다. 1605년 11월 5일 군인 출신의 가톨릭신도 가이 포크스는 훗날 저항과 불복종의 상징이 된 가면을 쓰고 국회의사당에 잠입해 폭약을 설치한다. 2006년에 개봉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브이(V)는 제3차 세계대전 후의 영국을 일당 독재국가로 만든 셔틀러 대법관을 암살한 뒤 화약열차로 국회의사당을 폭파한다. 브이도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썼다. 폭발음 대신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의 대포소리가 터져 나오고 종소리가 울리는 대목에서는 영국 의회의 상징인 빅벤이 무너져 내린다. 폭파장소가 왜 왕궁이나 대통령 관저가 아니고 의사당일까.

영국은 전통적으로 의회정치의 나라다. 의회를 장악하는 정파가 행정권력을 차지한다. 영국을 통치하는 것은 하원의원이자 집권당 대표인 총리이고, 총리와 함께 정치를 주무르는 권력자는 국왕이 아니라 의원들이다.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영화 속 독재자 셔틀러는 파시스트 극우정당 노스파이어의 대표이자 의회의 의장이다. 왕궁이 아니라 의사당이 독재의 산실로 묘사된다. 의사당이 폭파의 대상으로 선택된 이유다.

20대 국회 개원과 더불어 개헌 논의가 활발하다. 개헌론자인 신임 국회의장은 하필이면 제헌절 기념식에서 또 개헌론을 꺼내들었다. “이제는 여야 지도부가 국가 개조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2년 내에 개헌을 마무리하자. 늦어도 70주년 제헌절 이전에는 새로운 헌법이 공포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개헌 논의의 핵심은 권력구조 개편이다. 대통령 중임제 개헌 주장도 없지 않지만, 내각책임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이 세를 넓혀가고 있다. 내각책임제든 이원집정부제든 핵심은 국회의 행정권력 장악에 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정부의 법률안제출권에 대한 사실상의 통제수단을 확보한 국회가 그것도 부족했든지 아예 헌법을 뜯어고쳐 행정권력을 통째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개헌론자들은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가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한다. 승자 독식(獨食)의 권력구조를 깨뜨린다는 명분으로 3권분립 원칙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다. 승자 독식이라니, 국가권력을 무슨 떡 벌어진 밥상쯤으로 아는 모양이다. 수많은 갑질 중에서도 국회의원의 갑질이 가장 역겹다. 검찰 고위간부의 백억 대 치부(致富), 적자 공기업의 허위 성과급 잔치, 공동체에 대한 배려 없이 이익만을 추구하는 재벌기업의 탐욕까지, 서민들의 가슴을 찢는 부조리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국민의 혈세로 고액의 세비를 챙기는 국회의원들이 각종 특혜를 누리면서 으스대는 모습처럼 속 터지는 일도 없다.

툭하면 민간인도 불러다 호통치고, 가족과 친인척을 보좌관으로 채용하고, 부정청탁·금품수수금지법 적용대상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을 포함시키면서 자신들은 쏙 빠지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는 필요하지만 자기 지역구에는 설치할 수 없다고 억지 부리고, 신공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 지역에 건설해야 한다고 떼를 쓰는 국회의원들이 만약 행정권력까지 거머쥐게 되면 나랏일이 어찌될 것인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견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회와 의원들에 대한 견제도 시급한 상황이다.

세칭 진보파의 어느 대표적 인사는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87년 체제의 최대 기득권 집단 가운데 하나인 국회의원들끼리 추진하는 개헌이라면 기득권자의 담합 이상이 되기 어렵다”고 일갈했다. ‘권력 나눠먹기’란 진단이다. 헌법을 고치기 전에 계파정치의 뿌리인 공천 제도부터 뜯어고치기 바란다.

제헌절에 튀어나온 개헌론… 민주헌정을 출범시킨 제헌의회에 대한 예의가 고작 그것뿐인가. 후안무치한 의원들의 행태에 분노하는 민초(民草)들이 의사당을 결딴낸 가이 포크스의 가면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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