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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인권조사, 민간전문가 활용안 찾아야”

“北인권조사, 민간전문가 활용안 찾아야”

기사승인 2016. 09. 0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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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증거수집 등 정부 주도"
일각 "정부 경험없어 한계 우려"
사진으로 남겨야지<YONHAP NO-2169>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총회 참석자들이 31일 판문점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북한 인권 실태를 수집·정리하기 위한 북한인권법이 오히려 관련 국내 민간 단체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 시행에 따라 통일부 산하에 신설되는 북한인권기록센터가 인권실태 조사를 전담하게 되면서 민간단체와 업무 범위가 겹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인권 조사의 효율성을 위해 민간 단체들이 축적한 조사 경험과 자료를 등한시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31일 “절차적으로 서식도 맞추고 증거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법적인 절차를 따지는 과정은 정부가 해야 한다”며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정부가 주도하고 기존 탈북 인권 조사 단체는 전문성을 살려 다른 분야에서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 인권 실태 조사 과정에서 민간 전문가를 사실상 배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에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전담 조직이 없었다. 이에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는 2008년부터 정부 위탁을 받아 탈북자 정착시설인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자 전수 조사를 통해 북한 주민 인권 침해 실태를 수집·정리해 왔다. 2003년 설립된 NKDB는 13년 간의 조사 결과 10만건 이상의 북한 인권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상태다. 이 단체를 북한 인권 조사에서 배제할 경우 정부는 사실상 ‘제로베이스’에서 연구를 시작할 우려가 있다.

윤여상 NKDB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은 “북한인권법 시행으로 하나원 교육생 대상의 실태조사에 대해 계약 중단을 통보 받았다”며 “하나원 실태 조사만큼은 위탁이 아니더라도 협조의 방식으로 계속할 수 있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인권법 취지가 북한 인권을 지원하고 민간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활동을 못하게 되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인권법 시행에 따라 정부는 북한인권재단을 만들어 북한 관련 민간 단체들을 지원하는 역할도 맡는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민간 단체들은 지원을 기대하는 분위기지만 NKDB의 경우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다. 북한 인권 조사가 고유업무기 때문에 ‘전문성을 살려 다른 분야에서 노력’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북한 인권 조사 작업을 주도하는 것은 ‘체계적 조사와 법적 절차’ 강화가 목적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인권기록센터에 법무부에서 검사가 파견되는 등 법적 절차가 강화된다”며 “그런 면에서 과거보다는 절차적 정당성을 담보한 공정한 조사와 기록보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밝히는 자료 수집 목적은 향후 관련자 처벌 외에도 궁극적으로 북한 인권 현황을 국제사회와 공유해 북한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법적 절차 강화를 위해 기존 연구 노하우를 포기할 당위성은 없는 셈이다.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는 “민·관의 전문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잘 살려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법과 비슷한 모델은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도 있었다. 통일 이전 서독은 동독의 인권 침해 사건들을 철저히 기록하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잘츠기터 중앙문서기록보관소’에 보관했고, 당시 축적한 4만3000여 건의 자료는 동독의 인권 침해를 단죄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하지만 잘츠기터 중앙문서기록보관소는 동독 내에서 자행된 폭행 행위를 업무 범위로 가해자 처벌을 목적으로 운영됐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시 소재 주 최고 검찰청 소속의 중앙기록보존소는 검사 2명, 주 법무성 공무원 1명, 4명의 계약직 공무원 등 총 7명의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됐다. 북한인권법 시행으로 통일부는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공무원을 북한인권센터장으로 임명할 수 있으며 북한인권재단은 내년 예산 134억원에 인력 42명 규모로 편성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인권법 시행의 1차 수혜자가 통일부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외부에 위탁했던 연구를 정부가 모두 맡아서 한다는 발표는 사실 정확하지 않다. 북한 인권법 제13조 3항에 따르면 북한인권기록센터의 사업은 외부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 때문에 NKDB가 기존의 위탁사업을 계속해서 진행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법 시행 이후 조직을 정비하고 관계기관과 협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특정 인물이나 단체가 정부 사업에 들어오는지 여부를 밝히기는 적절치 않은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 인권 실태 조사에서 민간 단체를 완전히 배제시킨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라며 “이 분들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범위를 지속적으로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민간단체들이 그동안 해온 것이 많은 만큼 이들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수정·보완될 것이라고 본다”며 “정부 차원에서 북한 인권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는 것은 큰 진전이지만 통일부가 기존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한다고 해서 기존에 해왔던 사람들을 배제한다면 안하무인격인 처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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