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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법 없이 살 수 있는 법률가

[칼럼] 법 없이 살 수 있는 법률가

기사승인 2016. 09. 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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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엄마와 꼬마 아들이 공동묘지를 지나다가 “여기 훌륭한 변호사이자 정직한 사람이 누워있다”라고 새겨진 묘비명을 보았다. 꼬마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저기 왜 두 사람을 함께 묻었지?” 훌륭한 변호사는 정직한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꼬마아이도 잘 알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다.

미국에는 변호사에 관한 조크가 셀 수 없이 많다. 대부분 못된 변호사를 꾸짖는 익살이다. “정직한 변호사와 UFO(미확인 비행물체)의 공통점은? - 말은 항상 듣지만 찾을 수는 없다.” 더 기막힌 농담도 있다. “변호사에 관한 조크가 몇 개나 있을까? - 없다. 모두 사실이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독일 법조계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법조인을 이렇게 혹평했다. ‘법률가는 머리는 있으나 뇌가 없는 사람이다.’

서양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인가? 최근에 벌어진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일탈 사례를 보면 답은 부정적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법조인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탈세 변호사, 전관예우 변호인만이 아니다. 성 매수 부장판사, 랜드로버 재판장, 스폰서 검사, 뇌물 검사장…. 비리 의혹으로 국정을 혼란에 빠뜨린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검사 출신 변호사다. 법조인들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하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예전에도 범죄나 비리행위로 국민의 지탄을 받은 법조인들이 적지 않았다. 법조인의 형식적 자격은 있지만 실질적 자질은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남에게 서슴없이 법의 칼을 휘두르는 법기술자일수록 자신에게는 좀처럼 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오죽하면 ‘허가받은 도둑’이라는 오명(汚名)까지 얻었을까? 여러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한 마디로 인성(人性)이 결여된 탓이다.

‘법 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법을 지키지 않는 무법자라는 뜻이 아니다. 언행을 법규범으로 강제할 필요가 없는 사람,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덕담이다. 이와 반대로, 영어권에서는 법 없이 사는 사람을 ‘outlaw’라고 부른다. 법을 일탈(out)한 사람, 무법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저들에게는 부도덕한 사람이지만 우리에게는 양심적인 사람이 되는 셈이다.

언어생활의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사회 형성의 바탕이 되는 인간관계의 특성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정이 깊은 우리네는 일상적 인간관계에서 법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법을 의식하는 순간, 인간관계는 파탄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래, 이젠 법으로 해보자.” 관계를 끊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법률가는 인간관계의 끝장에서나 등장하는 결투용 검투사에 불과하다. 부부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법정은 이혼을 위한 장소, 법관은 이혼을 선언하는 집례자일 따름이다. 결혼예식장으로 자주 사용되는 서양의 법정, 결혼식 주례석에 종종 오르는 구미(歐美)의 법관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은 ‘법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의 사회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어떤 계약을 맺을 때는 처음부터 변호사의 상담을 받는다. 연방의회와 연방정부, 주 의회와 주 정부의 청사는 법률가들의 점령지처럼 되었다. 우리네는 소주 한 잔 함께 마시고 훌훌 털어버릴 문제를 저네들은 꼭 법정으로 가져가곤 한다. 그러나 관계의 시작부터 법과 법률가가 등장하는 사회는 바람직한 공동체가 아니다. 정으로 맺어진 우리 사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훨씬 더 인간적이다.

법조인들은 직업적으로는 ‘법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지만, 인격적으로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법률가’여야 한다. 직업적으로든 인격적으로든 법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법조인이라면, 그는 법치(法治)의 선봉이 아니라 천박한 법기술자에 지나지 않는다. 멀쩡한 몸으로 군복무를 제대로 마치지 않은 판·검사, 연인을 버리고 부잣집 사위로 들어간 변호사,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권력에 줄을 대는 법조인은 ‘법 없이 살 수 있는 법률가’가 아닐 개연성이 크다. 영악한 법기술자일 뿐이다. 이런 법조인이 고위 공직을 맡으면 국민이 불행해진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법률가, 그 아름다운 모순이 아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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