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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촛불 이후

[칼럼] 촛불 이후

기사승인 2016. 12. 0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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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주말마다 전국 각지의 광장에 백여만 명이 모여드는 평화적인 촛불 시위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시위대가 경찰 버스를 쇠갈고리로 끌어내고 휘발유 주입구에 불을 붙이려는가 하면,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막아야 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시위 현장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달라진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대통령의 불법을 질타하는 국민이 스스로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자각 때문일 것이다.

만해 한용운이 쓴 것으로 알려진 3·1 독립선언서 공약삼장은 ‘일체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정대하게 하라’는 당부로 끝을 맺는다. 질서와 평화가 3·1 독립항쟁의 내적 힘이었다. 내적 힘에는 혼이 담긴다. 3·1 항쟁의 민족혼은 상해임시정부를 탄생시켰고, 중국의 5·4운동과 간디의 비폭력투쟁인 사티아그라하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비폭력의 빛으로 타오르는 광장의 촛불이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재벌에게서 막대한 돈을 걷어 무슨 재단을 만들고 무슨 거창한 사업을 벌이면서 때로는 뒷돈까지 챙겨 왔다지만, 앞으로는 그따위 변칙과 불법이 용납될 수 없다. 지금까지는 권력의 측근이 나라의 공조직을 머슴처럼 부리며 국민의 주권을 농락했지만, 이제부터는 어떤 비선실세도 국가 공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도록 권력의 밀실을 폐쇄해야 한다. 과거 정권들은 적재적소의 인사 대신에 끼리끼리 인사로 자리 나눠먹기에 골몰했지만, 이제는 암세포 같은 패거리 정치의 싹을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이것이 비폭력의 촛불이 만들어가는 건강한 보수이자 진정한 진보일 것이다.

그러나 평화의 촛불 뒤꼍에는 음흉한 무리가 웅크리고 있다. 시민이 가꾸고 키워낸 민주주의의 열매를 냉큼 가로채기 위해 호시탐탐 틈을 엿보는 권력욕의 병자들, 썩은 보수 혹은 가짜 진보의 회귀를 노리는 좌우의 수구적 진영논자들, 정권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곁눈질하기에 바쁜 기회주의 정치꾼들, 대통령에게 바른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다가 문제가 터지자 책임회피에 여념이 없는 비굴한 관료들, 학교와 정치권을 오락가락하며 권력의 단맛을 찾아 부나비처럼 쏘다니는 폴리페서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비웃으며 민족이라는 명분으로 북의 세습독재에 활로를 열어주려는 이념의 노예들…. 이들이 촛불 이후에 펼칠 변신술(變身術)은 또 얼마나 현란한 모습일지, 짐작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학생과 시민의 희생이 성취해낸 4·19 혁명으로 집권한 야당은 신·구파로 갈려 밤낮없이 권력싸움을 벌이다가 군사정변을 불러왔다. 군부독재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10 항쟁은 권력을 다 거머쥔 것으로 착각한 민간 정치권의 분열로 신군부의 후계자에게 정권을 내주는 결과로 끝났다. 정의가 강물처럼, 진실이 거대한 분류(奔流)처럼 흐르는 새 시대를 열망한 민주주의의 혼은 정치권의 무능과 파쟁(派爭)으로 인해 번번이 역사의 그늘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진정이든 정략이든, 대통령은 임기 단축을 포함한 자신의 퇴진 일정을 국회에 일임했다. 촛불 민심에 대한 사실상의 투항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어떤 방안도 내놓지 못한 채 촛불광장의 눈치만 살피며 권력쟁탈에 혈안이 되어 있다. 불길한 기시감(旣視感)이 어른거린다. 정치권의 무능과 파쟁이 과거처럼 되풀이되고 또다시 눈물겨운 역사의 그늘이 드리우는 데자뷔가….

하야든 탄핵이든, 대통령의 퇴진은 시간문제로 다가왔다. 평화의 혼을 잃지 않는 한, 폭력의 선동에 휩쓸리지 않는 한, 촛불은 승리할 것이다. 문제는 촛불 이후다. 평화의 촛불 이후에는 이성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 촛불 곁에 도사린 음험한 세력이 촛불의 열매를 도적질하지 못하도록 주권자의 눈을 부릅떠야 한다. 권력욕으로 무장한 정치꾼들의 간교한 술수와 자극적인 선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냉철한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집단지성의 빛으로 어두움의 구태 정치를 몰아내는 것이 촛불 이후의 과제다. 촛불에 담긴 평화의 혼, 민주공화의 정신을 지켜내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촛불 이후가 더 밝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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