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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블랙리스트의 뒷면

[칼럼] 블랙리스트의 뒷면

기사승인 2017. 02. 2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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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할아버지 세대는 경제를, 아버지 세대는 정치를, 자식 세대는 문화를 추구한다.” 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진단은 오늘 우리의 현실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보수의 산업화와 진보의 민주화를 거쳐 통합의 선진화를 지향하는 이즈음, 우리의 문화수준은 괄목할 만큼 높아졌다. 문학·음악·미술·영상·건축 등 다양한 장르에서 한국 문화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선진화의 내실은 인문의 토양에서 움이 트고 문화의식의 뿌리에서 싹이 돋는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정책은 선진화의 길에서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 한류 열풍의 대중적·상업적 콘텐츠에 집중된 문화융성 정책은 ‘돈벌이 문화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최근의 블랙리스트 사태는 정치권력의 문화의식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문화예술 지원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정략적으로 춤을 추다 보니 인문이나 문화를 거론할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좌파정권에서는 좌파예술인들에게 지원이 집중되면서 우파예술인들이 배제되었고, 우파정권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좌파정부가 우파예술인들을 배제했다고 해서 우파정부가 좌파예술인들을 배제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남의 잘못이 내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우리 문화예술계가 현저히 좌파에 기울어져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적 우위를 차지한 좌파예술인들이 정부 지원에서 배제되다 보니 그 파문이 클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 사태는 현 정권의 국정운영이 얼마나 서툴고 어설픈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원에서 배제한 것도 치졸하거니와, 정권에 반대하는 것 외에는 굳이 좌파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까지 끼워 넣어 배제의 범위를 만 명 가까이나 늘린 것은 졸렬하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정치적·이념적으로 편향된 문화정책은 반문화적이다. 정부의 예술지원은 통합성과 공정성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태의 뒷면에는 또 하나의 일그러진 문화의식이 어른거린다. 대통령의 나체를 마네의 누드화에 패러디한 그림이 국회에 걸리는가 하면, 촛불시위 광장에 단두대가 끌려나오고 대통령의 목 인형이 군중의 발에 차이며 굴러다닌다. 누군가를 저질스럽게 모욕하는 극단적 행태가 민중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옹호될 수 없다. 적대감을 공개적으로 분출하는 언행이 표현의 자유라는 방패 뒤에 숨지 못한다. 한·미동맹을 국가안보의 중심축으로 하는 보수정권 하에서, 주한미국대사의 얼굴을 칼로 찌른 테러범과 안중근 의사의 이미지를 겹쳐놓은 그림을 전시하고도 정부 지원을 기대한다면 순진한 것이 아니라 모자란 것이다.

그런 것이 정녕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 거칠고 고단한 예술가의 길을 각오할 일이지 국민의 혈세로 혜택 받기를 바랄 일은 아니다. 만약 좌파정권 시절에 당시의 대통령을 조롱하는 그림을 전시한 화가가 정부 지원에서 빠졌다고 아우성친다면 제 정신이라고 했겠는가.

정부의 지원과 예술적 성취는 정비례하지 않는다. 현대 러시아문학은 문화적 환경이 척박하기 그지없던 스탈린과 브레즈네프 독재시절에 오히려 찬란했다. 파스테르나크와 솔제니친의 문학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서가 아니라 정부의 탄압에 무릎 꿇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지갑이 늘 비어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 지원금으로 지갑이 두둑해지기를 바랄 일은 더욱 아니다. 수십억원에 거래되는 화가 박수근의 작품들은 백내장 수술비조차 구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태어났다. “나를 키운 건 가난이었고, 가난은 나의 힘이었다.” 작가 조정래의 회상이다.

예술인이 바랄 것은 문화수요자들의 인정이지 권력의 인정이 아니다. 무릇 권력은 고매하지도 않고 너그럽지도 않다. 정부의 지원은 권력에의 예속을 요구한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정부에 아부하는 행위가 정당하지 않듯이, 정권을 모욕하면서 정권의 지원을 바라는 것도 온당치 않다. 권력을 조롱하면서 권력에 손을 벌린다면 문화적 감성이 뒤틀린 것이다. 제 작품의 예술성에 스스로 만족하면 그뿐, 어찌 정부의 지원에 눈길을 돌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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