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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크라테스의 선택

[칼럼] 소크라테스의 선택

기사승인 2017. 03.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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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보편적 선(善)의 추구를 평생의 신조로 삼았던 소크라테스가 악법의 준수를 주장했을 리 없다. 소크라테스에게 법은 곧 선이요 정의였다. ‘악법도 법’이라는 전제정치의 구호는 2세기경의 로마 법률가 울피아누스의 말로 전해진다.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아테네 법정은 그에게 적대적인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밀실이 아니었다. 500명의 시민이 참여한 민주적 배심제의 공개 법정이었다. 아테네 법정의 판결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이 아테네 시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아테네 시민인 소크라테스는 판결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 심판절차가 민주적이었기 때문에 독배를 마신 것이다. 그는 자기의 확신을 이유로 법정의 판결에 불복하지 않았다.

‘악의(惡意)에 악의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소크라테스가 탈옥하라는 친구의 권유를 뿌리치며 남긴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공동체가 자기의 무죄 주장을 배척하기로 했다면 그 결정에 따라 죽는 것이 또 하나의 선이라고 여겼다. 아테네는 소크라테스가 그의 철학을 포기하도록 종용했지만, 그는 철학을 포기하고 석방되는 대신 사형판결을 수용함으로써 자기의 철학과 아테네 시민권을 지켰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열한 명 중 다섯 명이 재임 중에 하야하거나 피살되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파면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다수 국민의 여론과 달리 대통령 탄핵에 격렬히 반발하는 태극기 시위대는 헌재의 심판이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정당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재는 스무 번의 공개심리를 거쳐 관여 재판관의 전원 일치로 탄핵소추와 심판절차가 정당하다고 선언했다. 만약 공석인 1인의 재판관이 보충되어 반대표를 던졌다 해도 소수의견에 그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한국인이었다면 한국의 최고법원이 한국의 헌법절차에 따라 내린 결론에 승복했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국회의 소추와 헌재의 심판으로 결정되었다. 검찰과 특검의 수사까지 겹쳤으니 입법·사법·행정 3부가 총동원된 셈이다. 그러나 헌정사 최초로 대통령을 탄핵한 것은 국회의원도, 법관도, 검사도 아니다. 국민이 이끌어낸 일이다. 정치인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정치의 과제를 제도정치권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광장의 시민에게 떠맡긴 채, 곁에서 고함만 지르다가 그 열매만 낚아채려는 파렴치한 권력욕을 참회해야 한다.

탄핵은 부패와 공권력 남용에 대한 헌법의 심판이지 특정 정파나 대선 후보들의 승리가 아니다. 그들이 대통령 탄핵에 환호할 만큼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법적으로 정당하며 도덕적으로 깨끗한가? 아닐 것이다. 헌법질서를 그르치고 공권력을 남용한 이유로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민주헌정의 원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익을 제치고 특정 이념과 정파적 이익에만 몰두해온 패거리 정치꾼들, 온갖 특혜와 특권을 누리면서 음으로 양으로 국법질서를 어지럽혀온 여야의 부패 정치인들, ‘대면보고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대통령에게 직언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자리만 꿋꿋이 지켜온 무능한 고위 관료들 모두가 대통령과 함께 탄핵된 것이나 다름없다.

태극기 시위대의 뜻이 꼭 박근혜 전 대통령 개인을 옹호하려는 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다음 정권이 친북·반미의 길로 치달리지 않을까 하는 안보의 우려를 강하게 제기한다. 이 우려가 해소되지 않는 한 국민통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차기 정부는 소크라테스가 자기의 소신과 공동체의 요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 탄핵은 헌정사의 불행이지만, 이를 계기로 민주주의가 한층 더 성숙되고 국민통합과 국가안보가 보다 튼실해지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그 일차적 책임은 차기 대통령의 몫이다. 아니, 그 대통령을 선출할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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