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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짝거린다고 다 금은 아니다

[칼럼] 반짝거린다고 다 금은 아니다

기사승인 2017. 04.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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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유일신 야훼를 섬기는 유대인들은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異邦)을 우상숭배의 무리로 멸시했다. 그 유대인의 경전인 구약성서는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고레스) 2세를 ‘야훼가 세운 목자(로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아)’로 묘사한다. 이방인인 키루스가 바빌로니아의 포로였던 유대인들을 해방하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로이와 메시아는 나중에 예수에게 붙여지는 구세주의 명칭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은 키루스를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보고 ‘키루스의 교육’이라는 책을 썼다. 그에 따르면,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키루스는 페르시아의 최고신 아후라마즈다를 제쳐두고 바빌로니아의 수호신 마르두크를 찬양한다. 피정복지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면서 관용과 포용의 정책을 편 키루스는 적장을 죽이지 않고 도리어 중용했으며 패전국의 백성을 노예로 삼던 관습도 폐지했다. 또한 솔선수범하여 국법을 지킴으로써 준법(遵法)의 의무를 백성들과 함께 짊어졌다. 그는 강요된 복종이 아니라 자발적 충성을 이끌어내는 동행과 공감(共感)의 지도자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한 아테네는 참주정치를 거쳐 민주정치를 수립했지만,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시민들의 원초적 욕구에 영합하는 중우(衆愚)정치로 흐르면서 법치가 흔들리고 국력이 쇠퇴해갔다. 스승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아테네 민주정치에 실망한 크세노폰은 스승을 따라 철인정치를 동경하면서, 통치자가 마땅히 걸어야할 동행과 법치의 길을 키루스에게서 찾았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들마다 자신의 장점을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다. 남부러운 학력과 다채로운 경력으로 사회적 명성을 쌓아온 엘리트형, 풍부한 국정경험으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자기과시형, 불우한 성장환경을 극복하고 정치적 성취를 이뤘다는 자수성가형…. 겉만 보면 모두 금빛 후보다. 이들이 반짝거리는 금빛 공약을 내흔들며 표심을 낚으려 한다. 그 금빛이 도금한 빛깔인지 진짜 황금빛인지는 선거가 끝난 뒤에나 알 수 있을 테니 답답한 노릇이다. 겉만 살짝 도금한 가짜 금반지가 진짜 황금반지보다 더 반짝거리는 법이다.

적폐청산이라는 선악 2분법적 구호에 민심이 쏠린다는 여론조사결과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절실한 것이 국민통합인데, 후보들의 선거 전략은 편 가르기가 핵심이다. 화합과 협치를 내세우는 공약에서도 구체적 실천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정권도 대탕평을 공약하고 출발했지만, 종착지는 대통령 탄핵이었다. 동행과 법치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헬조선을 한탄하는 청년들의 절망감,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의 철옹성 바깥에 내쳐진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박탈감, 할 일 없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의 허탈감…. 그 아픔에 공감하는 믿음직한 치유의 처방도 눈에 띄지 않는다. 도리어 그들의 상처를 헤집고 분노를 들쑤시는 비열한 정략들이 선거판을 휘젓는다. 북핵의 위협과 미·중의 각축에 대처하는 안보 공약에서도 신뢰할 만한 경륜을 찾기 어렵다. 사드 배치에 국회동의나 국민투표를 요구하며 반대 투쟁을 벌이던 후보와 정당들이 선거의 유·불리에 따라 슬며시 입장을 바꾸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법률체계와 국제관계법에 대한 무지(無知)의 탓이자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무정견(無定見)을 드러낸 것이다.

역대 대통령 열한 명 중 여덟 명이 하야·망명·피살·투옥·자살·탄핵 등의 불행을 맞았다. 국민과 공감하지 않고,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앞선다. 최선의 적임자가 없어 차선의 후보를 뽑아야 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최악의 인물을 피하기 위해 차악(次惡)의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면 이 나라 민주정치와 법치주의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국민주권시대에 키루스의 철인정치는 생뚱맞다. 다만 대중의 이기적·감성적 욕구에 아부하기보다 국민에게 절제와 인내를 요구하는 위기관리의 역량, 스스로 준법의 모범이 되어 국민과 함께 법치 구현의 길을 동행하는 공감의 지도력이 아쉬운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명언처럼, 반짝거린다고 다 금은 아니다. 동행의 발걸음, 공감의 리더십은 겉으로 반짝거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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